유래
시조 : 최원호(崔元浩)
시조 최원호(崔元浩)는 고려 명종 때 우성공신(佑聖功臣)으로 문하시중(門下侍中), 상장군(上將軍)에 오르고 문하시랑(門下侍郞)에 추증되었다. 그 후 문하시중(門下侍中), 진강군개국후(晉康郡開國侯)에 봉해진 그의 아들 최충헌(崔忠獻)과 최충헌의 아들 최우(崔瑀)가 강화천도의 공으로 진향후(晉陽侯)에 봉해져 후손들이 우봉에 살아오면서 본관을 우봉으로 하였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최생(崔生, 1586 丙戌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 모두 1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금천
우봉(牛峰)은 황해도 금천군(金川郡)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에는 우잠(牛岑: 牛嶺·首知衣)이라 불렸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 우봉으로 고쳤다. 1015년(고려 현종 6)에는 평주현(平州縣: 平山)에 예속되었고, 1062년(문종 16)에 경기도 개성부에 예속되었다. 1395년(태조 4)에 현으로 승격되었으며, 1413년(태종 13)에는 황해도에 속하였다. 1469년(예종 1)에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1652년(효종 3)에 강음(江陰)·우봉과 합쳐 금천군으로 개칭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강음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우봉(牛峰)·토산(兎山)·강음을 금천군으로 통합하였다. 1954년 황해도가 남도·북도로 분할됨에 따라 황해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우봉최씨는
1985년에는 94가구 365명, 2000년에는 60가구 196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20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