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등록
  • 국내최초 족보 전문사이트 Since 1997
  • 한국인의 뿌리와 전통을 이어갑니다
  • 뿌리를 찾아서는 국내에 현존하는 287개 성씨와 그에 따르는 3천여 개의 본관별 시조와 유래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 www.rootsinfo.co.kr
    성씨의 종류와 유래 성씨의 역사 족보 이야기 친인척 호칭법 국가 연대표 역대왕 연대표 성씨별 인구순위 본관별 인구순위 고사성어


     
    월성최씨(月城崔氏)
    유래
     시조 : 최진립(崔震立)
    시조 최진립(崔震立)은 조선 선조 때의 인물로 무과에 올라 공조참판(工曹參判)겸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에 이르고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으며 인조 병자호란 때 순절한 하였다. 최진립(崔震立)을 1세조로 하여 경주최씨(慶州崔氏)에서 분관한 후 본관을 월성으로 정하여 대를 이어오고 있다.
    주요 인물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
    월성(月城)은 경상북도 남동부에 위치한 경주(慶州)의 옛 지명으로 기원전 57년에 6촌(六村)이 연합하여 고대국가를 형성, 국호를 서라벌(徐羅伐)·사로(斯盧)·사라(斯羅)로 하고, 수도를 금성(金城)이라 하였다. 65년(신라 탈해왕 9) 시림(始林)에서 김씨 시조가 탄생하여 국호를 계림(鷄林)으로 칭하기도 하였으나, 별칭으로 사용하였다. 307년(기림왕 10)에 최초로 국호를 신라(新羅)로 하였다. 935년(고려 태조 18)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이 왕건에 항복하자 경주로 개칭하고 식읍을 주었고, 그를 사심관으로 삼았다. 비로소 처음으로 경주라는 명칭이 생겼다. 987년(성종 6) 동경(東京)으로 개칭하고 유수(留守)를 두어 영동도(嶺東道)에 속하게 하였다. 1008년(목종 11) 때 낙랑군(樂浪郡)이라 별칭하다가 1030년(현종 21) 삼경(三京)의 제도가 실시되자 동경(東京)을 설치하고 충렬왕 때 계림부(鷄林府)로 개편하였다. 1202년(신종 5) 경주 야별초의 반란으로 지경주사(知慶州事)로 강등되었다가 1219년(고종 6) 동경으로 환원되었다. 1413년(태종 13) 계림부를 경주부로 개칭한 이후 1415년 병마절도사영을 두었다가 1417년 울산으로 이전하였다. 1637년(인조 15)에 속현인 자인현이 분리 독립하였다. 1895년(고종 32) 군면 폐합으로 경주군이 되었고, 1955년 경주읍과 내동면 전역, 천북면과 내남면 일부가 통합되어 경주시로 승격했으며, 경주군은 월성군으로 개칭되었다. 1989년에는 월성군이 경주군으로 개칭되었다. 1955년에는 경주군과 통합하여 시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월성최씨는
    1985년에는 4,085가구 17,514명, 2000년에는 4,191가구 13,463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82,843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