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최언영(崔彦英)
최언영(崔彦英)은 최억수(崔億壽)의 아들이며 최득문(崔得文)의 손자로 조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군기주부(軍器主簿)를 지냈고, 충사(忠祠)에 제향되었다고 전해온다.
한편 문헌이 없어 세계(世系)나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 없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최한주(崔翰周, 1794 甲寅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1년(1864) 증광시 삼등(三等)
* 모두 1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생원진사시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송화
풍천(豊川)은 황해도에 있었던 옛 지명으로 고구려 깨에는 구을현(仇乙縣) 또는 굴천(屈遷)이었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 굴현현(屈峴縣)으로 개칭하고, 양악군(楊岳郡: 安岳)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초에 풍주(豊州)로 이름을 바꾸고, 995년(성종 14) 도호부로 승격하였다가 1018년(현종 9) 군으로 강등되고 방어사(防御使)가 설치되었다. 1395년(태조 6) 진(鎭)이 설치되었고 병마사(兵馬使)가 지주사(知州使)를 겸했으며, 1413년(태종 13) 군현제 개편 때 은율(殷栗)을 합병하여 풍율군(豊栗郡)이라 하였다가 곧 분리하였다. 1469년(예종 1) 왕비 안순왕후 한씨의 외향(外鄕)이라 하여 풍천도호부(豊川都護府)로 승격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풍천군이 되어 해주부 관할이 되었다가, 1896년 황해도 풍천군이 되었다. 1909년 풍천군을 폐지하여 송화군(松禾郡)에 합병했으나, 1967년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대부분의 옛 풍천도호부 지역이 과일군으로 분리 개편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풍천최씨는
1985년에는 23가구 120명, 2000년에는 122가구 395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55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