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태맹례(太孟禮)
시조 태맹례(太孟禮)는 태집성(협계태씨)의 9세손이다. 태명례는 조선 단종때 진사(進士) 를 지내다가 화를 입어 1454년(단종 2) 함북 길주로 유배되었는데 후손들이 그곳에 살면서 태명례를 시조로 하고 협계태씨에서 분관하여 조상의 고향인 남원을 본관으로 하였다.
인물
태맹례(太孟禮)의 아들 태지(太知)가 무과에 급제하여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를 지내고 가선대부(嘉善大夫)로 공조 참의(工曹參議)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손자 태원희(太元熙)는 훈련원 판관(訓練院判官)을 역임하여 훈도(訓導)를 지낸 태인국(太仁國, 만호 태원령의 아들)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항렬자
25世
상(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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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世
환(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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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世
준(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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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世
석(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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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世
원(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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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世
식(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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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世
광(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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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世
성(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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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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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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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6世孫은 25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북도 남원
남원(南原)은 오늘날 전라북도 남원시 일원의 지명으로 16년(백제 온조왕 34) 무렵에 고룡군(古龍郡)이라 불렀다가 196년(초고왕 31)에 백제의 5방 중 대방군(帶方郡)이 되었다. 685년(신라 신문왕 5)에 9주 5소경의 하나로 남원소경이 설치되었고, 757년(경덕왕 16)에는 남원군으로 개칭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5현을 관할하는 남원부로 개편되었다. 1018년(현종 9) 지부사(知府事)로 고쳤다. 1310년(충선왕 2) 대방군(帶方郡)으로 강등되었다가 1360년(공민왕 9) 부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 남원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1457년(세조 3)에는 남원진영을 두었고, 1654년(효종 5)에는 전라좌영을 설치하였다. 1740년(영조 16) 일신현으로 강등되었으나 이듬해 환원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라 4부 중 하나인 남원관찰부가 되었다가 1910년 남원 48방을 22개면으로 통폐합하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남원군으로 개칭하였다. 1931년 남원면이 남원읍으로 승격되었고, 1981년에는 남원읍이 시로 승격하여 남원시와 남원군으로 분리되었다가, 1995년 남원군이 남원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남원태씨는
1985년에는 371가구 1,511명, 2000년에는 351가구 1,105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523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