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태금취(太金就),
시조 태금취(太金就, 일명 태금룡)는 태중상(太仲象)의 18세손으로 상장군(上將軍)을 지냈다. 또한 병마원수(兵馬元帥)로 영천군(永川君)에 봉해진 태웅성(太雄成)의 아들이다.
시조 태금취는 고려 고종 때 금교(金郊)에서 몽고군을 격퇴하는데 공을 세워 대장군(大將軍)에 올라 영순(永順) 군(君)에 봉해져, 상주군 북면 임하촌에 정착하여 살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협계태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영순으로 삼아오고 있다.
인물
태효정(太孝貞)의 아들 태두남(太斗南)이 뛰어났다. 그는 일찍이 김진양(金震陽)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워 1513년(중종 8) 생원, 진사 양시험에 합격, 같은 해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형조 좌랑(刑曹佐郞)을 거쳐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를 지냈으며, 1536년(중종31) 종부시정이 되어 춘추관 편수관(春秋館編修官)을 겸했으나 권신(權臣) 김안로(金安老)의 미움을 사서 성주 목사로 좌천되었다. 특히 그는 시문(詩文)에 뛰어나 저서로 쇄언(蔘言)을 남겼으며, 옥천서원에 제향되었다. 이외 태언룡(太偃龍)과 태순민(太舜民)이 진사(進士)를 지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태두남(太斗南, 1486 丙午生) : 문과(文科) 중종8년(1513) 식년시 을과(乙科)
태응규(太應奎, 1675 乙卯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28년(1702) 식년시
태석룡(太錫龍)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38년(1543) 식년시 삼등(三等)
태두남(太斗南)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8년(1513) 식년시 삼등(三等)
태언룡(太偃龍)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1년(1546) 식년시 삼등(三等)
태순민(太舜民, 1539 己亥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3년(1570) 식년시 삼등(三等)
태석룡(太錫龍)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38년(1543) 식년시 삼등(三等)
태두남(太斗南)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8년(1513)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8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명, 생원진사시 7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문경
영순(永順)은 경상북도 문경시(聞慶市) 영순면 일대의 옛 지명으로 본래는 상주(尙州) 북면(北面) 임하촌(林下村)이었다. 고려 때 이 마을 사람 대금취가 몽골를 공격하는데 공을 세워 영순현(永順縣)으로 승격시키고 상주(尙州)에 속하게 하였다. 1906년 월경지 정리로 상주에 속해있던 영순면이 문경군에 편입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영순태씨는
1985년에는 902가구 3,638명, 2000년에는 1,302가구 4,142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4,626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