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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주판씨(海州判氏)
    유래
    해주판씨의 선조는 고려 말엽에 충신으로서 왕을 보필하는 관직에 있었으나 간신배의 모함을 받아 반역의 누명을 쓰고 강화도 근처의 섬으로 유배 도중에 풍파를 만나 배가 파선이 되어 표류하다가 구사일생으로 한강 하류에 있는 밤섬에 도착하여 그 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살고 있는 판영호(判榮鎬)씨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마포구 율도동(栗島洞, 밤섬)에 살고 있었던 종손 판봉석(判鳳石)이란 사람이 대대로 전해오던 보첩(譜牒)을 보관하다가 1925년 대홍수로 밤섬 전역이 침수되었을 때 유실되었다고 한다. 그 후 1967년도에 밤섬에 살고 있었던 후손들은 정부시책에 따라 마포구 와우산 중턱에 옮겨 살다가 점차 전국 각처로 이사를 가고 지금은 몇가구 남지 않았다. 근대에 와서 처음 밤섬에 정착했던 선조의 이름을 판해율(判海栗)로 존모(尊慕)하고, 전국에 흩어진 후손들이 단결하여 족보 편찬을 서두르고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해주
    해주(海州)는 황해도 남해안에 위치한 도청소재지이다. 고조선시대에 대방군(帶方郡)에 속하여 고죽(孤竹)으로 불리었다. 고구려 때에는 내미홀(內米忽) 또는 지성(池城)·장지(長池) 등으로 불리우다가, 748년(신라 경덕왕 7)에 폭지군(瀑池郡)으로 바뀌었다. 936년(고려 태조 19)에 태조가 남쪽이 바다와 접하고 있다고 하여 해주를 사명(賜名)했으며 성종 때 와서는 별호로 대령(大寧)·서해(西海)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983년(성종 2)에 해주목으로 승격된 데 이어 1018년(현종 9)에 안서도호부로 개편되었고 1247년(고종 34)년에는 다시 해주목으로 환원되었다. 1616년(광해군 8)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23년(인조 1)에 다시 목으로 복구되었다. 1895(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해주부가 설치되었고, 1896년 도제 실시로 황해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1945년 해주시로 개편되었다. 1954년 북한의 관제 정비로 황해남도에 편입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해주판씨는
    1985년에는 47가구 179명, 2000년에는 87가구 290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253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