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팽적(彭逖)
시조 팽적(彭逖)은 중국 금릉(金陵) 사람으로 1351년(고려 충정왕 3년) 원나라 노국공주가 공민왕과 결혼하여 입국할때 내각학사(內閣學士)로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용강백(龍岡伯)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용강으로 하였다.
인물
팽적(彭逖)의 손자 팽조(彭祖)가 조선에서 판중추부사를 역임했고, 그의 아들 팽양은 대사헌(大司憲)에 올라 크게 명성을 날림으로써 가문을 중흥시켰다.
한편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팽성(彭誠)은 팽양의 손자이며, 팽성의 아들 팽정현(彭汀顯)은 어모장군에, 팽성의 손자 팽호(彭湖)는 건공장군(建功將軍)에 올랐다. 그 외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팽봉서(彭鳳瑞)와 상호군을 역임한 팽순(彭淳), 팽경대(彭敬大)가 유명했으며, 군자감정을 지낸 팽윤대(彭潤大)는, 공조참의를 역임한 팽지근(彭只根), 호조참판을 지낸 팽봉혁(彭鳳爀) 등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세거지
- 북한 지역에 주로 분포되어 있고, 일부는 경기도 양주군과 충북 단양군 등지에 살고 있다.
항렬자
6世
윤(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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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世
근(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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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世
혁(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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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世
주(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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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世
진(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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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世
원(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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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世
주(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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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世
희(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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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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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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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7世孫은 6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평안남도 용강군
용강은 평안남도 서남단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황룡국(黃龍國)이었으며 후에 고구려에 병합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황룡성(黃龍城) 또는 군악(軍岳)이라 하고 영을 두었으며, 후에 용강이라고 고쳐 현령으로 하였다.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의 변천을 거쳐 1895년 갑오경장 때에 군으로 되고, 1914년에 부군 폐합 대에 함종군의 일부를 통합,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용강팽씨는
1985년에는 263가구 1,048명, 2000년에는 259가구 795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842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