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김규(金珪)
시조 김규(金珪)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11세손 이다. 그는 고려시대에 나라에 공을 세우고 김포군(金浦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김포로 삼게 되었으나, 문헌(文獻)이 실전되어 중간계대를 고증할 수 없다.
인물
조선때 문과에 급제하고, 진사에 오른 김순오(金淳五)와 김낙서(金洛瑞)가 유명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김낙서(金洛瑞)는 시문에 능했고, 규장각 서리를 지냈으며, 정조때 천수경들의 모임인 송석원 시사의 동인으로 시(詩)와 풍류를 즐겼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애봉(金愛奉, 1611 辛亥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의제(金義悌, 1659 己亥生) : 무과(武科) 숙종10년(1684) 정시 병과(丙科)
김순오(金淳五, 1864 甲子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19년(1882)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3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2명, 생원진사시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세거지
- 평북 영변군 일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기도 김포
김포(金浦)는 경기도 서쪽 한강(漢江) 하구에 위치한 옛 김포군 지역의 이름이다. 고구려 때 김포는 검포현이라 하였고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김포로 고쳐져 장제군(長堤郡: 富平)의 영현이 되었다. 1172년(고려 명종 2)에 분리되어 감무를 두었으며, 1198년(신종 1)에 이르러 왕의 태(胎)를 묻었다 하여 현으로 승격하였다.
1414년(태종 14)에 양천(陽川)을 합하여 금양현이라 하였고, 나중에 다시 양천은 금천에, 김포는 부평부에 합하였다가 1416년에는 다시 현으로 복귀되었다. 1632년(인조 10)에 인조의 생부(生父) 원종(元宗)의 능인 장릉(章陵)을 양주로부터 이장함에 따라 군으로 승격되었다. 1896년(고종 33)에 경기도 김포군으로 개편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양천군이 김포군에 통합되었고, 1934년에는 김포군의 일부였던 군내면이 김포면으로 개칭되었다. 1979년 5월 1일 김포면이 읍으로 승격하였고, 1995년 검단면이 읍으로 승격하였고, 같은 해 검단읍이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었다. 1998년에는 김포군이 김포시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김포김씨는
1985년에는 0명, 2000년에는 6가구 26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310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