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피인고(皮寅古)
시조인 피인고(皮寅古)는 홍천피씨 시조 피위종(皮謂宗)의 후손으로 고려시대에 대상(大相),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는데 단산군(丹山君)에 봉해짐으로써 본관을 단양(단산=단양)으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물
직학사(直學士) 피맹인(皮孟仁), 한림학사(翰林學士) 피원휴(皮元休), 상서(尙書) 피자휴(皮子休), 현감(縣監) 피원량(皮元亮), 참의(參議) 피재구(皮栽九), 사성(司成) 피영기(皮永基), 참의(參議) 피연길(皮然吉), 한성판윤(漢城判尹) 피세숙(皮世塾), 학자(學者) 피병추(皮秉樞) 등이 있다.
특히 피자휴(皮子休)는 종부사주부(宗簿寺注簿)를 거쳐 상서(尙書)에 이르렀는데, 박학하고 시문(詩文)에 능했으며, 고려말의 사람인 피원량(皮元亮)은 순창현령(淳昌縣令)으로 있으면서 왜구를 방비하는데 힘썼다. 또 조선조 헌종 때 미산(薇山) 피병추(皮秉樞)는 학문이 넓고 문장에 뛰어난 학자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북도 단양
단양(丹陽)은 충청북도 단양군 지역의 옛 행정구역명으로 고구려의 적산현(赤山縣) 혹은 적성현(赤城縣) 일대였다. 단양은 삼국시대에 삼국이 각축을 벌였던 지역으로, 551년(신라 진흥왕 12)에 백제와 신라의 공동작전으로 신라의 영토가 되어 진흥왕이 순시할 때 세운 적성비가 남아 있다. 757년(경덕왕 16)에 내제군(奈提郡: 堤川)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단산현(丹山縣)으로 이름을 바꾸고 1018년(현종 9)에 원주(原州)에 속하였다가 뒤에 충주(忠州)의 속현이 되었다. 1291년(충렬왕 17) 감무(監務)를 두면서 독립하였고, 1318년(충숙왕 5)에 단양으로 개칭하여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군(郡)이 되었고,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충주부(忠州府)의 관할하에 들어갔다가, 1914년에 군면 폐합으로 영춘군(永春郡)을 병합하여 단양군이 되었다. 1979년에 단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단양피씨는
1985년에는 263가구 1,037명, 2000년에는 436가구 1,399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624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