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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산한씨(谷山韓氏)
유래
시조 : 한예(韓銳)
시조 한예(韓銳)는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1206년(고려 희종 2년) 8학사의 한사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금자광록대부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로 곡산부원군에 봉해 졌으며 후손들이 곡산에 살면서 본관을 곡산으로 하였다. 인물
시조 한예(韓銳)의 아들 한희(韓禧)가 고려에서 밀직부사(蜜直副使, 왕명의 출납, 궁중의 숙위, 군기 등을 맡아보던 관청의 정 3품 벼슬)를 지냈으며, 손자 한익(韓翊)은 판도판서(版圖判書, 판도사의 으뜸 벼슬)에 올라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낸 한진(韓瑨, 익의 아들)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조선 태조 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낸 한옹(韓雍)은 한예(韓銳)의 6세손으로 능성 군수(綾城郡守) 등을 거처 태종 때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瓚成, 임금을 보좌하며 정무를 총괄하던 행정부 최고 기관의 정 1품 벼슬)에 이르렀다. 한편 학자로 이름난 한여유(韓汝愈))는 일찌기 서경덕(徐敬德), 송시열(宋時烈)에게 학문을 배워 상수(象數), 병진(兵陳), 성률(聲律) 등에 능통했고, 한치상(韓致相)의 아들 한이원(韓以原)은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냈으며 경사(經史)와 시(詩), 역학(易學) 등에 뛰어났다. 그외 부윤(府尹)을 역임한 한덕후(韓德厚)와 학자 한시유(韓是愈), 한문건(韓文健) 등이 명성을 날림으로써 가문을 더욱 빛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한이원(韓以原, 1651 辛卯生) : 문과(文科) 숙종13년(1687) 식년시 병과(丙科)
한덕전(韓德全, 1685 乙丑生) : 문과(文科) 숙종43년(1717) 식년시 병과(丙科) 한권(韓淃) : 문과(文科) 태종11년(1411) 식년시 을과(乙科) 한덕후(韓德厚, 1680 庚申生) : 문과(文科) 숙종45년(1719) 증광시 을과(乙科) 한미수(韓眉壽, 1531 辛卯生) : 무과(武科) 선조3년(1570) 식년시 을과(乙科) 한국관(韓國觀, 1697 丁丑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2년(1726) 식년시 삼등(三等) 한이원(韓以原, 1651 辛卯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1년(1675) 증광시 삼등(三等) 한덕서(韓德瑞, 1683 癸亥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36년(1710) 증광시 이등(二等) 한시유(韓是愈, 1670 庚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31년(1705) 증광시 삼등(三等) 한국기(韓國琦, 1718 戊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23년(1747) 식년시 삼등(三等) 등 모두 18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4명, 무과 1명, 생원진사시 13명) 항렬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곡산
곡산(谷山)은 황해북도 북동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구려 때에는 십곡성(十谷城)이라 불렸고, 748년(신라 경덕왕 7) 십곡성현(十谷城縣)으로 편성되었다가 757년에 진서현(鎭瑞縣)이라 개칭하여 영풍군(永豊郡)이 관할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곡주(谷州)로 개편되고 995년(성종 14)에는 방어사(防禦使)를 두었다. 1393년(태조 2)에는 곡산으로 개칭하고 부(府)로 승격하였으나, 태종 때는 곡주(谷州)에서 다시 곡산군으로 격하하였다. 1669년(현종 10) 부로 승격되었으나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곡산군(谷山郡)이 되어 개성부(開城府)에 속하였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황해도로 편입 되었다. 별칭으로는 덕돈홀(德頓忽)·고곡(古谷)·곡성(谷城)·진서(鎭瑞)·상산(象山) 등으로 불리고 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곡산한씨는
1985년에는 4,722가구 21,195명, 2000년에는 1,562가구 4,917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6,266명으로 조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