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김삼준(金三端)
시조 김삼준(金三端)은 경순왕의 일곱째 아들인 언양김씨(彦陽金氏) 시조인 김선(金鐥)의 후손으로 1486년(성종17)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장령, 김제 군수 등을 지냈다.
언양김씨에서 분적한 연원과 본관을 담양으로 하게 된 연유는 확실하지 않으나 국조방목(國朝榜目, 과거급제자 목록)에 그의 본관이 언양으로 되어 있고, 또 족보에 그의 아들 김난무(金蘭茂), 김송무(金松茂) 형제 중 김난무는 달성계이고, 김송무는 언양계로 되어 있어 김난무의 후대에서 개성으로 입북하여 조상의 고향인 담양을 본관으로 한 것으로 짐작케 한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복매(金福每, 1593 癸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호신(金好信, 1605 乙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석해(金石諧, 1645 乙酉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5년(1679)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3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2명, 생원진사시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담양
담양(潭陽)은 전라남도 북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현재 담양은 조선시대의 담양도호부(潭陽都護府)와 창평현(昌平縣)을 1914년에 병합한 지역이다. 봉산면·무정면 이북지역은 대체로 옛 담양도호부 영역이고, 창평면·고서면·대덕면·남면·수북면 등 남부는 옛 창평현 지역에 해당한다. 백제의 추자혜군(秋子兮郡)이었던 것을 신라 경덕왕이 추성군(秋成郡)으로 고쳤고, 995년(고려 성종 14)에는 담주도단련사(潭州都團練使)를 두었다가, 1018년(현종 9) 도단련사를 폐지하였고, 담양군으로 개편하여 나주(羅州)에 편입시켰다. 1172년(명종 2)에는 감무(監務)를 두었고, 1391년(공양왕 3)에는 원율현(原栗縣: 담양군 금성면 원율리 일대)을 병합하였다.
1395년(태조 4) 군으로 승격하였고, 1399년(정종 1)에 부(府)로 다시 승격하였으며, 1413년(태종 13)에 담주에서 담양으로 개칭되어 도호부(都護府)가 되었으나, 1728년(영조 4)에 현(縣)으로 강등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담양군이 되어 남원부(南原府)의 관할하에 있었으며, 1905년(광무 9)에 담양부를 담양군으로 고쳤고, 1908년(순종 2)에 폐지된 옥과군 일부가 담양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에 군면 폐합으로 창평군(昌平郡)이 폐지되어 담양군에 병합되었다. 1943년에 담양면이 담양읍으로 승격되었다. 1976년에는 담양호와 광주호가 건설되어 용면 및 남면의 일부가 수몰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담양김씨는
1985년에는 141가구 715명, 2000년에는 288가구 900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19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