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허선문(許宣文)
시조 허선문(許宣文)은 가락국(駕洛國) 김수로왕비(金首露王妃) 허황후(許黃后)의 30세손으로 고려시대 대광공(大匡公)이었다. 대대로 공암촌(孔巖村, 김포군 양천)에 살면서 농사에 힘써 거부가 되었다. 마침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정벌할 때 군량이 부족하여였는데 군량을 보급하여 군의 사기를 회복케 함으로서 후백제 견훤을 대파하였다. 태조가 그 공을 가상히 여겨 가부(假父)라 칭하고 공암을 식읍으로 하사하였다. 이로 인하 여 본관을 공암(양천)으로 하였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허직(許稷, 1590 庚寅生) : 문과(文科) 광해군9년(1617) 알성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허관(許寬) : 문과(文科) 중종12년(1517)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허균(許筠) : 문과(文科) 선조30년(1597) 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허색(許穡, 1586 丙戌生) : 문과(文科) 인조5년(1627) 정시2 갑과(甲科) 장원급제
허결(許結, 1787 丁未生) : 문과(文科) 순조26년(1826) 별시3 갑과(甲科) 장원급제
허경(許坰) : 문과(文科) 중종31년(1536) 친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허윤(許玧, 1645 乙酉生) : 문과(文科) 숙종9년(1683) 증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허침(許琛) : 문과(文科) 성종13년(1482) 진현시 삼등(三等)
허사흠(許思欽, 1522 壬午生) : 문과(文科) 선조2년(1569) 별시 병과(丙科)
허굉(許○, 1471 辛卯生) : 문과(文科) 연산군9년(1503) 별시 삼등(三等)
등 모두 365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95명, 무과 27명, 생원진사시 233명, 역과 3명, 의과 4명, 주학 3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서울특별시
양천(陽川)은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일대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 때의 재차파의현(齊次巴衣縣)이었으며, 신라 경덕왕 때 공암현(孔巖縣)으로 고쳤으며 율진군(栗津郡)의 영현이 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양천현(陽川縣)으로 개칭되어 현령을 두었으며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1896년(고종 33)에 경기도 양천군(陽川郡)으로 개편되었으나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경기도 김포군(金浦郡)에 흡수되었고, 1979년 양천군 관할이었던 양동면과 양서면이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양천허씨는
1985년에는 27,338가구 114,866명, 2000년에는 40,260가구 130,286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49,505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