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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현씨(昌原玄氏)
    유래
     시조 : 현덕유(玄德裕)
    시조는 현덕유(玄德裕)는 현담윤(玄覃胤, 연주현씨의 시조)의 셋째 아들로 고려 명종 16년에 문과에 올라 예부시랑 서경유수(西京留守)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참지정사(參知政事) 대사공(大司空) 등을 역임한 뒤 회원(檜原, 창원의 옛 이름)군에 봉해졌고 정헌(正獻)이라 시호(諡號)되었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면서 본관을 창원으로 삼았다.
    인물
    현승(玄昇)은 회원군(檜原郡) 현덕유(玄德裕)의 아들로, 고려 때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이르렀고, 그이 아들 현장(玄璋)은 추밀원사(樞密院使)를 지냈다. 현장(玄璋)의 아들 현문혁(玄文爀)은 도원사(都元師)를 지냈다. 그의 동생인 현상혁(玄象爀)은 삼사사(三司事)를 역임하였다. 상의사도(尙衣司徒)를 지낸 현간(玄簡)의 아들 현태로(玄台老)는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고, 그의 아들 현성의(玄性義)도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좌참찬(左參贊)을 지낸 현효생(玄孝生)의 아들인 이안공(夷安公) 현석규(玄錫圭)를 대표적인 인물로 들 수 있다. 그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손자인 서원군(瑞原君)의 사위로, 세조6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여 감찰(監察) 개성부도사(開城府都事) 집의(執義) 등을 거쳐 성종5년 도승지(都承旨)에 이르렀다. 그후 대사헌(大司憲) 형조판서(刑曹判書)를 지내고, 성종9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평안도 관찰사(觀察使)가 되어 선정(善政)을 베풀었으며, 성종10년 우참찬(右參贊)이 되었다. 이밖에도 첨정(僉正)을 지낸 현토원(玄土元), 관찰사(觀察使)를 지낸 현지준(玄之俊)이 있으며, 은재(隱齋) 현수간(玄守諫)은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남재(南齋) 현성운(玄星運)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냈고, 현호민(玄好敏)은 한말 내부협변(內部協辨)을 역임하였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현석규(玄錫圭, 1430 庚戌生) : 문과(文科) 세조6년(1460) 별시 을과(乙科)
     현상백(玄尙白, 1609 己酉生) : 문과(文科) 인조17년(1639) 식년시 병과(丙科)
     현진(玄璡, 1507 丁卯生) : 문과(文科) 중종29년(1534) 식년시 을과(乙科)
     현신달(玄信達, 1643 癸未生) : 무과(武科) 숙종1년(1675) 증광시 병과(丙科)
     현득립(玄得立, 1600 庚子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현석규(玄錫圭, 1623 癸亥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현응진(玄應珍, 1556 丙辰生) : 무과(武科) 선조17년(1584) 별시 병과(丙科)
     현관(玄瓘, 1531 辛卯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1년(1568) 증광시 삼등(三等)
     현수인(玄守仁) : 음양과(陰陽科) 선조9년(1576) 식년시 ()
    * 모두 9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3명, 무과 4명, 생원진사시 1명, 음양과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세거지
    - 경기도 개풍군 남면
    - 경남 밀양군 하남읍 양동리
    - 경남 합천군 봉산면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남도 창원
    창원(昌原)은 경상남도 남쪽에 위치하는 산업도시이며 도청소재지이다. 고대에는 금관가야(金官伽倻)에 속했으나 신라가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굴자군(屈自郡)이 설치되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의안군(義安郡)으로 이름을 바꾸고, 합포현(合浦縣: 馬山)·웅신현(熊神縣: 熊川)·칠제현(漆隄縣: 漆原)을 영현으로 관할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금주(金州: 金海)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뒤에 감무가 파견되면서 독립되었다. 1274년(원종 15)과 1281년(충렬왕 7)에 원나라와 고려 연합군의 일본 정벌 때 창원지방은 합포를 중심으로 연합군의 기지가 되었다. 그 공으로 1282년에 의안군이 의창현(義昌縣)으로, 합포현이 회원현(會原縣)으로 승격되었다. 1408년(태종 8)에 회원현을 병합하여 창원부(昌原府)로 승격되고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영이 설치되었으며, 1413년에는 창원도호부(昌原都護府)가 되었다. 임진왜란 직후인 1601년(선조 34)에 창원대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603년(선조 36)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영이 진주로 옮겨갔다. 1661(현종 2)~70년(현종 11)에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창원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상남도 창원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창원군에 다시 편입되었다. 1980년에 마산시 의창동을 편입하여 창원시로 분리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창원현씨는
    1985년에는 617가구 2,744명, 2000년에는 376가구 1,261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2,053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