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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씨의 종류와 유래 성씨의 역사 족보 이야기 친인척 호칭법 국가 연대표 역대왕 연대표 성씨별 인구순위 본관별 인구순위 고사성어


     
    진주형씨(晋州邢氏)
    유래
     시조 : 형옹(邢顒)
    시조 형옹(邢顒)은 당(唐)나라 태종(太宗) 때 사람으로 고구려 영류왕 17년에 영류왕의 요청으로 당나라에서 파견한 8학사 중의 한사람으로 고구려에 들어와 당나라 문화, 문학, 유교 보급에 공헌하고 삼중대광을 지냈으며 남양의 관적을 하사 받았다. 그후 그의 16세손 형공미(邢公美)가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좌복야(左僕射), 문하시중(門下侍中) 등을 지내고, 1280년(충렬왕 6년) 도원수가 되어 일본 일기도에서 왜군을 정벌하는데 공을 세워 지밀직사사(智密直司事)로 일등공신(一等功臣)에 책록되고 진양군(晋陽君)에 봉해 졌으므로, 후손들은 그의 할아버지 형방(邢昉)을 1세조로 하고 본관을 진주(반성)로 하였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형효갑(邢孝甲, 1571 辛未生) : 문과(文科) 광해군8년(1616) 별시 병과(丙科)
     형사보(邢士保) : 문과(文科) 중종17년(1522) 식년시 병과(丙科)
     형효갑(邢孝甲, 1571 辛未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광해군2년(1610) 식년시 삼등(三等)
     형사철(邢士哲)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연산군10년(1504)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4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2명, 생원진사시 2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항렬자
    35世
    종(鍾)○
    시(時)○
    36世
    ○욱(旭)
    ○구(九)
    37世
    남(南)○
    38世
    ○우(宇)
    39世
    성(成)○
    40世
    ○희(熙)
    41世
    강(康)○
    42世
    ○재(宰)
    43世
    정(廷)○
    44世
    ○규(揆)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36世孫은 35代孫)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남도 진주
    진주(晉州)은 경상남도 남서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삼한시대에 소국인 고순시국(古淳是國)이 있었던 곳이다. 백제의 거열성(居烈城)이었고, 신라 문무왕 때 신라의 영토가 되어 거열주(居烈州)라 불리었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 9주 5소경제(九州五小京制)의 실시와 함께 강주도독부(康州都督府)로 고쳤다가, 혜공왕 때 청주(菁州)로 개칭되었다. 고려 초에 강주(康州)로 환원되었다.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을 둘 때 진주목이 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정해군(定海軍)이라 하고 절도사(節度使)를 두어 산남도(山南道)에 속하게 하였다. 1012년에 안무사(按撫使)로 고쳤다가, 1018년(현종 9)에 진주목으로 복구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진주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진주목으로 회복되었다. 1392년(태조 1)에 진양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가 되었다가 1402년(태종 2)에 진주목으로 환원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진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13도제(道制) 실시로 경상남도 진주군이 되었다. 1931년에 진주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39년 진주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나머지 지역이 진양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995년 진양군이 진주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진주형씨는
    1985년에는 1,226가구 5,145명, 2000년에는 1,820가구 5,822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5,453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