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김장생(金長生)
시조 김장생(金長生)은 중국 명나라 한림학사(翰林學士)로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등주(安邊:안변)에서 대를이어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등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신라 경순왕의 후손 김식(金軾)이 조선시대에 무과에 급제하고 훈련원 판관으로 있을때모반을 계획하다가 안변(安邊)으로 유배되었는데 후손들이 등주(登州)로 본관을 쓰다가 후에 경주김씨로 합본했다는 설도 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여(金礪, 1559 己未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18년(1585) 식년시 이등(二等)
* 모두 1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생원진사시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항렬자
18世
병(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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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世
규(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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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世
종(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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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世
원(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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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世
동(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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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世
현(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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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世
재(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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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世
석(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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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世
영(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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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世
근(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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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9世孫은 18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함경남도 안변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영토로 비열홀군(比列忽郡) 또는 천성군(淺城郡)이라고 하였다. 신라 제24대 진흥왕(眞興王) 때 비열주(比列州)로 고쳐서 군주(軍主)를 두고 통치하였으며,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삭정군(朔庭郡)으로 다시 고쳤다. 고려시대에 등주라고 하였으며 995년(성종 14)에 단련사(團練使)를 두었다. 1018년(현종 9)에는 안변이라고 하고 도호부(都護府)를 두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세조 때 진(鎭)을 설치하였으며, 1471년(성종 2)에 대도호부로 승격하였다가 1509년(중종 4)에 다시 도호부가 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군(郡)으로 승격하였으며 1914년에 학포군(鶴浦郡), 영풍군(永豊郡)을 합병하여 안변군(安邊郡)이 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등주김씨는
1985년에는 85가구 365명, 2000년에는 84가구 263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61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