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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씨의 종류와 유래 성씨의 역사 족보 이야기 친인척 호칭법 국가 연대표 역대왕 연대표 성씨별 인구순위 본관별 인구순위 고사성어


     
    진양화씨(晋陽化氏)
    유래
     시조 : 화명신(化明臣).
    시조는 화명신(化明臣)은 중국 명(明)나라 사람으로 조선 중엽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귀화했다. 낭야(瑯琊) 사람인 그는 명나라 중엽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낸 본래의 성은 화(花)씨이며 본래의 이름은 화광신(花光新) 였다고 한다.

    만주의 여진족이 강성해지면서 북경을 점령한 청군(淸軍)이 낭야(瑯琊)에까지 밀려들자 화명신(化明臣)은 "어진 사람은 기회를 알고 행(行)한다"며 '예의의 나라' 조선으로 일가를 이끌고 망명했다. 멀리 광주(廣州) 교외의 소영대(沼靈臺)에 터를 잡고 정착, 이름도 성도 숨기고 살았다. 조선 성종 때 그의 이름이 조정에 알려졌다. 성종은 "중국의 화(花)씨가 조선국에 귀화한 것은 향화(向化)의 의리"라며 "化"자를 성으로 내렸다. 화(花)씨가 화(化)씨가 된 연유다. 경성군(慶城君)이라 봉해진 그는 도승지(都承旨)에 기용됐다. 그러나 화(化)씨는 득성(得姓) 시조 이후 사성보첩(賜姓譜牒)을 잃었다. 헌종 때 후손들이 안동부(安東府)에 보존돼 있는 족보를 가까스로 찾아냈으나 원본이 크게 훼손돼 정확한 선계(先系)를 밝히지는 못하고 화명신(化明臣)의 6대손으로 알려진 화섭(化燮)을 1세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간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남도 진주
    진양(晉陽)은 경상남도 남서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삼한시대에 소국인 고순시국(古淳是國)이 있었던 곳이다. 백제의 거열성(居烈城)이었고, 신라 문무왕 때 신라의 영토가 되어 거열주(居烈州)라 불리었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 9주 5소경제(九州五小京制)의 실시와 함께 강주도독부(康州都督府)로 고쳤다가, 혜공왕 때 청주(菁州)로 개칭되었다. 고려 초에 강주(康州)로 환원되었다.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을 둘 때 진주목이 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정해군(定海軍)이라 하고 절도사(節度使)를 두어 산남도(山南道)에 속하게 하였다. 1012년에 안무사(按撫使)로 고쳤다가, 1018년(현종 9)에 진주목으로 복구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진주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진주목으로 회복되었다. 1392년(태조 1)에 진양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가 되었다가 1402년(태종 2)에 진주목으로 환원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진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13도제(道制) 실시로 경상남도 진주군이 되었다. 1931년에 진주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39년 진주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나머지 지역이 진양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995년 진양군이 진주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진양화씨는
    1985년에는 400가구 1,592명, 2000년에는 252가구 824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762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