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황규수(黃奎壽)
관성황씨 기해보(己亥譜) 서문에 따르면 고려 명종조(1171-1197) 때 황규수(黃奎壽)가 금자광록대부 중서문하성 문하시랑평장사를 역임하고 관성군(管城君)에 올랐다. 그 뒤 후손들이 황규수를 기세조(起世祖)로 하고 관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그 후 10세손 황계우(黃繼祐)가 조선 세종 때 공조참의를 거쳐 좌찬성에 올라 가문을 빛냈다.
또 황수(黃粹)를 시조로 전하기도 한다. 황수(黃粹)는 고려 고종 때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지냈다. 그러나 전해오는 문헌이 없어 본관의 유래나 세계(世系)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 황지현(黃之鉉)을 일파로 전하기도 한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북도 옥천
관성(管城)은 충북 옥천군(沃川郡)에 있던 지명으로 본래 고시산군(古尸山郡)이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관성황씨는
1985년에는 47가구 186명, 2000년에는 141가구 430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28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