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김염(金濂)
시조 김염(金濂)은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셋째아들이다.
그는 고려 시대에 벼슬이 봉어(奉御)에 이르렀고 김해군(金海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김해로 하고있다.
김녕김씨 시조인 김시흥(金時興)의 8세손 김문기(金文起)가 단종복위운동에 찬가하여 사육신과 함께 순절하고 3족을 멸하는 위난이 닥치자 김문기의 8촌동생 김춘(金春; 김해군수)은 황해도 풍천으로 피신했다가, 성종2년에 다시 평안도 용천군 동하면 법흥동(法興洞)에 옮겨가 터를잡고 살면서 자손이 번창하자 본관을 법흥으로 하고 김춘을 관조(寬祖)로 하여 1세조로 하고 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경준(金敬濬, 1862 壬戌生) : 문과(文科) 고종23년(1886) 함경도도과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세진(金世鎭, 1838 戊戌生) : 문과(文科) 고종13년(1876)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기손(金驥孫) : 문과(文科) 성종13년(1482) 친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유신(金庾信) : 문과(文科) 중종11년(1516)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극검(金克儉) : 문과(文科) 세조12년(1466) 중시 일등(一等) 장원급제
김명악(金命岳, 1821 辛巳生) : 문과(文科) 철종5년(1854) 별시2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덕승(金德承, 1595 乙未生) : 문과(文科) 광해군11년(1619) 별시 을과(乙科)
김집(金集, 1707 丁亥生) : 문과(文科) 영조22년(1746) 별시 병과(丙科)
김빈(金○) : 문과(文科) 태종16년(1416) 중시 을과(乙科)
김재일(金載一, 1749 己巳生) : 문과(文科) 정조10년(1786)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1289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28명, 무과 536명, 생원진사시 471명, 역과 59명, 의과 39명, 음양과 15명, 율과 33명, 주학 8명)
※ 과거급제자는 본관은 같으나 계통이 다른 성씨와 구분이 안된 것이다.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남도 김해
김해(金海)는 경상남도 김해시(金海市) 일대의 옛 지명으로 낙동강(洛東江) 하구 남서쪽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가락국(駕洛國)의 문화 중심지로 발전하여 왔다. 532년(신라 법흥왕 19) 신라에 병합되어 금관군(金官郡)이 되었다. 680년(문무왕 20)에 금관소경(金官小京)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김해소경(金海小京)으로 바꾸어 양주(良州: 梁山)의 관할로 두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김해부(金海府)로 개칭되었고 임해현(臨海縣)으로 다시 강등되었다가 곧 임해군으로 승격되었다. 995년(성종 14)에 김해안동도호부(金海安東都護府)로 개칭하여 영동도(嶺東道)에 속하였다가 1012년(현종 4) 김해군방어사로 강등되었으나 1018년부터는 의안군(義安郡: 昌原)·함안군(咸安郡)·칠원현(漆原縣: 漆原面)·웅신현(熊神縣: 鎭海)등을 영현으로 삼았다. 1270년(원종 11) 방어사(防禦使) 김훤이 인접지역인 밀성(密城)의 난을 평정하여 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1293년(충렬왕 19) 현으로 강등되었다. 1308년 금주목(金州牧)으로 승격하였으나 1310년(충선왕 2) 김해부(金海府)로 격하되었다. 1413년(태종 13) 김해도호부로 승격되어 세조 때 진(鎭)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김해군이 되었고, 1918년에 좌부면과 우부면이 김해면으로 통합되었다. 1931년에는 김해면이 김해읍으로 승격되었고 1981년 김해군의 김해읍이 김해시로 승격하여 분리 되었으며 1995년에는 김해군과 통합하여 김해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