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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악김씨(唐岳金氏)
    유래
     시조 : 김락(金樂)
    당악김씨는 경주김씨(慶州金氏)에서 분적한 성씨이다. 시조 김락(金樂)은 신라 문성왕의 5세손이며, 신라에서 대아찬(大阿湌)을 지낸 김무력(金武力)의 첫째 아들이다.

    김락은 왕건(王建)을 도와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통합삼한일등공신(開國統合三韓一等功臣)으로 당악군(唐岳君, 중화 옛 지명)에 봉해졌으며 식읍 3,000호를 하사받았다. 원보(元甫) 겸 대장군(大將軍)에 올라 927년(태조 10) 7월 대량성(大良城, 지금 합천)을 함락시키고, 그 해 10월 대구 팔공산(八公山) 동수전투(桐藪戰鬪)에서 견훤(甄萱)과 싸우다가 왕건이 포위되어 위급하게 되자 신숭겸(申崇謙)과 함께 왕건을 덤불 속으로 숨기고 왕의 수레를 대신 타고 격전하다가 전사하였다.

    그 후 태조는 그의 충절을 기려 익대효절광위갈충위사전공신(翊戴效節匡衛竭忠衛社戰功臣)에 추봉하고 지묘사(智妙寺)를 세워 그의 명복을 빌었으며, 당악김씨를 하사하였고, 후손들에게 당악군(唐岳郡)을 식읍(食邑)으로 내렸다. 이 후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삼고 본관을 당악으로 하고 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여욱(金汝旭, 1600 庚子生) : 문과(文科) 인조21년(1643)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치간(金致簡, 1745 乙丑生) : 문과(文科) 정조7년(1783) 식년시 병과(丙科)
     김이적(金履迪, 1777 丁酉生) : 문과(文科) 순조1년(1801) 식년시 병과(丙科)
     김용익(金龍翼, 1813 癸酉生) : 문과(文科) 헌종12년(1846) 식년시 을과(乙科)
     김익창(金益昌)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김만홍(金萬弘, 1647 丁亥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1년(1675) 식년시 이등(二等)
     김시형(金時亨, 1865 乙丑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22년(1885) 식년시 삼등(三等)
     김상화(金象華, 1799 己未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7년(1870) 식년시 삼등(三等)
     김용환(金龍煥, 1837 丁酉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10년(1873) 식년시 삼등(三等)
     김치대(金致大, 1742 壬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50년(1774) 식년시 삼등(三等)
    등 모두 15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4명, 무과 1명, 생원진사시 10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세거지
    평안북도 삭주군
    평안남도 평원군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평안남도 중화
    당악(唐岳)은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과 강남군(江南郡) 일대의 옛 행정구역 이름이다. 고구려 때에는 가화압(加火押)이라 했고,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당악현으로 고쳤다. 고려 초기에는 서경에 딸린 지역으로 당악촌이라 불리우다가 1136년(인종 14) 중화현으로 고치고, 1322년(충숙왕 9) 중화군으로 승격하였다. 1592년(선조 25)에는 도호부로 승격하였고, 1896년(고종 33) 평안남도 중화군과 상원군이 되었다가 1914년 군면 폐합으로상원군이 중화군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당악김씨는
    1985년에는 0명, 2000년에는 0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5,400명으로 조사되었다.
    참고사항
    - 인구수가 급격하게 달라지는 이유는 김해김씨(당악)와의 혼동 때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