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김명진(金明晋)
시조 김명진(金明晋)은 신라 경순왕의 23세손으로 전하나 문헌이 없으므로 세계를 알 수 없다. 본관을 봉산으로 삼게 된 유래와 전후 세계는 상고할 수 없다.
참고로 김이상(金履祥 : 鳳山太守)의 후손이라고도 하고, 상산김씨(商山金氏)와 동원이라고도 전해지고 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씨동(金種同, 1598 戊戌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춘산(金春山, 1604 甲辰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경리(金敬履, 1734 甲寅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47년(1771) 식년시 삼등(三等)
김성환(金星煥, 1745 乙丑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정조7년(1783) 증광시 삼등(三等)
* 모두 4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2명, 생원진사시 2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봉산
봉산(鳳山)은 황해도 은파군과 봉산군 지역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 때 휴암군(鵂嵓郡) 또는 조파의(租坡衣)·휴류성(鵂鶹城) 등으로 불리었다. 신라 때에는 서암군(栖巖郡)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봉주(鳳州)로 개칭하여 방어사(防禦使)를 두었으나 현종 때 폐하고 황주(黃州)에 속하게 하였다. 충렬왕 때에 봉양군(鳳陽郡)으로 고쳐 지사(知事)를 두었다가 후에 다시 봉주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봉산군으로 고쳤고, 1947년에 사리원면이 사리원시로 승격하면서 봉산군에서 분리되었다. 1982년 10월에는 해서리가 사리원시에 포함되는 대신 은파군의 청룡리가 봉산군에 이관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봉산김씨는
1985년에는 52가구 196명, 2000년에는 153가구 515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307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