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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김씨(扶餘金氏)
    유래
     시조 : 김작신(金作辛)
    시조 김작신(金作辛)은 신라 경순왕의 태자 김일(金鎰)의 7세손으로 전한다. 그는 고려시대에 호장(戶長)을 지냈으나 유적이 없어 중간의 세계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후손들이 선대의 거주지인 부여를 본관으로 했다.
    인물
    김희조(金希祚)의 아들 김언(金彦)이 병자호란 때 토적의 공을 세우다가 적의 피습으로 전사하고 병조판서에 증직되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지성(金之聲, 1610 庚戌生) : 문과(文科) 인조26년(1648) 식년시 을과(乙科)
     김병걸(金秉杰, 1874 甲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28년(1891) 증광시 삼등(三等)
     김정균(金正均, 1874 甲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25년(1888) 식년시 삼등(三等)
     김선(金璿) : 율과(律科) 0년(0)
    * 모두 4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명, 생원진사시 2명, 율과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세거지
    - 1930년도 국세조사에 의하면, 함경도 갑산군 회린면과 운흥면 일원에 30호가 살고 있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
    부여(扶餘)는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의 옛 지명으로 소부리(所夫里: 泗沘)라 불렀고, 백제의 마지막 수도로 660년(백제 의자왕 20)에 나당(羅唐)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면서 신라에 예속되어 672년(신라 문무왕 12)에 부여도독부가 설치되었으며, 751년(경덕왕 10)에 이르러 부여현(扶餘縣)이라고 개칭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 부여군으로 고치고 웅주(熊州: 公州) 영현에 두었다. 1018년(고려 현종 9) 공주에 예속되었다가, 1172년(명종 2)에 감무(監務)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이후 부여현으로 조선 말까지 유지되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공주부 부여군, 1896년에 충청남도 부여군이 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홍산현(鴻山縣)·임천군(林川郡) 전역과 석성현(石城縣)·공주군 일부를 편입해서 16개 면으로 부여군이 형성되었다. 1960년 부여면(扶餘面)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부여김씨는
    1985년에는 92가구 374명, 2000년에는 333가구 1,024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505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