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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김씨(水原金氏)
    유래
     시조 : 김품언(金稟言)
    시조 김품언은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손자이며 김해군(金海君) 김염(金濂)의 아들이다.

    김품언(金稟言)은 고려 현종 때에 거란군의 침입을 도원수(都元帥) 강민첨(姜民瞻)과 함께 토평하는 데 공을 세워 은자광록대부 문하시랑평장사, 태자소보(太子少保)에 올라 수성군(隨城君)에 봉해지고 식읍을 하사 받았다. 후손들이 수성(수원)에 대대로 살면서 본관을 수원으로 하였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상린(金尙麟, 1711 辛卯生) : 문과(文科) 영조20년(1744) 식년시 병과(丙科)
     김능(金棱, 1813 癸酉生) : 문과(文科) 헌종9년(1843) 식년시 병과(丙科)
     김형린(金亨麟, 1754 甲戌生) : 문과(文科) 정조7년(1783) 식년시 병과(丙科)
     김명주(金命珠, 1787 丁未生) : 문과(文科) 순조22년(1822) 식년시 병과(丙科)
     김정운(金廷雲, 1802 壬戌生) : 문과(文科) 순조28년(1828) 식년시 병과(丙科)
     김명유(金命瑜, 1731 辛亥生) : 문과(文科) 정조4년(1780) 식년시 병과(丙科)
     김복해(金福海) : 문과(文科) 세종17년(1435) 식년시 병과(丙科)
     김응린(金應麟, 1729 己酉生) : 문과(文科) 영조47년(1771) 식년시 병과(丙科)
     김응득(金應得, 1603 癸卯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복형(金福兄, 1588 戊子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80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8명, 무과 61명, 생원진사시 9명, 의과 2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세거지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산동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중옥리
    전라남도 여수시 미평동 등
    항렬자
    61世
    규(揆)
    62世
    근(根)
    63世
    충(忠)
    64世
    성(成)
    65世
    강(康)
    66世
    구(求)
    67世
    병(秉)
    68世
    섭(燮)
    69世
    중(中)
    70世
    흠(欽)
    71世
    우(雨)
    72世
    동(東)
    73世
    광(光)
    74世
    규(圭)
    75世
    진(鎭)
    76世
    승(承)
    77世
    상(相)
    78世
    대(大)
    79世
    교(敎)
    80世
    호(鎬)
    81世
    윤(潤)
    82世
    -
    83世
    -
    84世
    -
    85世
    -
    86世
    -
    87世
    -
    88世
    -
    89世
    -
    90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62世孫은 61代孫)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기도 수원
    수원(水原)은 경기도 중남부에 위치하며, 수성(隋城)이라고도 하였다. 삼국시대에는 매홀군(買忽郡), 757년(신라 경덕왕 16)에는 수성군(水城郡)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수주(水州)로, 1271년(원종 12)에 수원도호부(水原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후에 수주목(水州牧)이 되었다가, 1310년(충선왕 2) 수원부로 되었다. 1362년(공민왕 11)에는 군으로 환원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다시 도호부로 고쳤고, 세조 때에는 진(鎭)을 두었으며, 1789년(정조 13)에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수원의 진산인 화산(華山)으로 옮기고, 팔달산 동측으로 수원의 읍치를 이전하였다. 1793년에는 수원을 개성부·강화부·광주부와 같은 지위인 유수부(留守府)로 승격시키고, 1794년부터 수원성 축성을 시작하였다. 1796년에 축성을 완료하여 수원은 새로운 성곽도시로 변모했으며, 옛 읍성의 전형적인 모습을 오늘날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인천부 관할의 수원군으로 되었다가, 1896년 경기도 수원군이 되었다. 1931년 수원면(水原面)이 수원읍(水原邑)으로 승격되었고, 1949년 수원군을 분할하여 수원시로 승격시키고 나머지 지역은 화성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67년에 경기도청이 옮겨옴에 따라 수원은 명실상부한 경기도의 중심지가 되었다. 1988년 구제 실시로 권선구와 장안구를 설치하고, 1993년 팔달구(八達區)를 설치하였다. 1995년 화성군 태안읍 영통리가 팔달구로, 화성군 반월면 당수리·입북리가 권선구로 편입되어 시역이 확장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수원김씨는
    1985년에는 3,648가구 15,493명, 2000년에는 4,997가구 16,009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21,060명으로 조사되었다.
    참고사항
    시조 김품언(金稟言)의 증손인 김봉기(金鳳麒)의 아들 김숙흥(金俶興)은 평해김씨(平海金氏)로 분적하였다고 한다.

    파명(派名)을 살펴보면, 예산파(禮山派), 순천파(順天派), 영일파(迎日派)로 나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