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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김씨(順天金氏)
유래
시조 : 김총(金摠)
시조 김총(金摠)은 김알지의 후손으로 825년(신라 헌덕왕 17년)에 태어나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을 도와 관직이 인가별감(引駕別監)에 이르렀다. 공을 세워 평양군(平陽君, 현 순천)에 봉해져서 후손들이 본관을 순천으로 하였다. 후손인 김윤인(金允仁), 김종서(金宗瑞)를 각각 1세조로 두 파가 있다. 김윤인(金允仁)은 고려 말 전라도 순천부(順天府) 여수(麗水) 출신으로 조선조에 여산군(麗山君)에 봉해졌다가 평양부원군(平陽府院君)으로 개봉된 김승주(金承霔)의 증조부이다. 김태영(金台泳)은 김종서(金宗瑞)의 조부이다. - 시조의 묘소는 전남 승주군 주암면 장촌에 있으며 10월 1일 향사한다. 인물
김 평(金平) : 14세손, 고려 희종원년(1205)에 추밀원사(樞密院使)를 지냈다.
김윤인(金允仁) : 19세손, 고려시대 전객사령(典客寺令)을 지냈다. 김태영(金台泳) : 20세손, 의정부 좌찬성을 지냈다. 김승주(金承) : 22세손, 고려말(우왕) . 조선시대 초기 검교좌의정을 지냇다. 김종한(金宗漢) : 22세손, 조선시대, 계유정란으로 돌아가시고 영조시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김종서(金宗瑞) : 22세손, 조선(세종)시대의 좌의정을 지냈다. 김순고(金舜皐) : 27세손, 조선 선조시 비변사 제조를 지내시었으며 최초로 전투함에 포를 비치하였다. 김희열(金希說) : 1537년 병조·예조·호조의 참판을 지내시고 , 1551년(명종 6)에는 경주부윤을 지냈다. 김경장(金慶長) : 1653년 황산찰방(黃山察訪), 예원집설(禮苑集說), 천문성상도(天文星象圖), 구암문집이 남아 있다. 김광엽(金光曄) : 29세손, 사헌부의 집의·지평 등 요직을 거쳐서 이조정랑과 성균관의 직강·사예·사성을 지냈다. 김여물(金汝物) : 28세손, 1591년에는 의주목사, 임진왜란시 신립(申砬)의 종사관으로 참전 중 달천에서 순절,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김흥국(興國) : 학자이며 문학가이다. 김복흥(金復興) : 1570년(선조 3년)에 생원·진사시에 합격, 별제·직장의 벼슬을 거쳐 의금부도사를 역임하였다. 김윤안(金允安) : 29세손, 1612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대구부사·대사간을 역임하였다. 김류 : 29세손, 1644년 영의정이 되어 영국공신(寧國功臣)1등에 녹훈되고 순천부원군(順天府院君)에 책봉되었다. 김경징(金慶徵) : 30세손, 1623년 정사공신(靖社功臣), 순흥군(順興君)에 봉해졌다. 도승지, 한성부판윤을 지냈다. 김진표(金震標) : 31세손, 1656년 공조참, 무송·삼척·부평 등의 수령을 지냈고, 1671년 돈녕부도정에 임명돼었다. 김수담(金壽聃) : 1691년 병조좌랑·예조좌랑을 역임하였다. 김종희(鍾喜) : 39세손, 항일운동가, 한화그룹 설립한 기업가이다. 김종철(鍾哲) : 39세손, 정치가, 한국국민당 총재. 김승연(昇淵) : 40세손, 기업가, 한화그룹 회장.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성(金聲, 1772 壬辰生) : 문과(文科) 순조26년(1826) 별시2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진표(金震標, 1584 甲申生) : 문과(文科) 효종4년(1653)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여물(金汝岉, 1548 戊申生) : 문과(文科) 선조10년(1577) 알성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유(金○, 1571 辛未生) : 문과(文科) 선조29년(1596) 정시 을과(乙科) 김영헌(金永憲, 1838 戊戌生) : 문과(文科) 고종28년(1891) 식년시 병과(丙科) 김문탁(金文鐸, 1718 戊戌生) : 문과(文科) 영조35년(1759) 식년시 병과(丙科) 김집(金㙫, 1686 丙寅生) : 문과(文科) 경종3년(1723) 식년시 을과(乙科) 김기(金璣) : 문과(文科) 중종31년(1536) 중시 병과(丙科) 김약묵(金若默) : 문과(文科) 중종35년(1540) 별시 을과(乙科) 김준(金畯, 1793 癸丑生) : 문과(文科) 헌종6년(1840) 식년시 을과(乙科) 등 모두 132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48명, 무과 9명, 생원진사시 75명) 항렬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순천
순천(順天)은 전라남도 남동쪽에 위치하며 백제시대에는 함평이었으나 신라 경덕왕 때 승평(昇平)으로 고쳤으며, 983년(고려 성종 2) 지명을 순주(順州)·자주(慈州)·은주(殷州)로 고치고 각 주마다 방어사(防禦使)를 두었다. 995년(성종 14) 곤해군절도사(袞海軍節度使)가 파견되고, 1012년(현종 3) 안무사로 고쳤다가, 1036년(정종 2) 다시 승평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때 부유현(富有縣)·돌산현(突山縣)·여수현(麗水縣)·광양현(光陽縣)을 속현(屬縣)으로 거느렸다. 1309년 승주목(昇州牧), 1310년 순천부(順天府)가 되었다. 1413년(태종 13) 군현제 개편 때 도호부로 승격하여, 조선시대 동안 순천도호부는 전라좌도 남부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1479년(성종 10) 속현이었던 여수현(麗水縣)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설치되어 전라좌도 해안방어의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다. 순천의 별호는 평양(平陽)이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남원부 소속 순천군으로 개칭하고, 1896년 전라남도 순천군이 되었다. 1949년 8월 순천읍과 도사면 일부 해룡면 일부를 합하여 순천시가 되고 종래의 순천군은 승주군으로 개칭하였다. 1995년 순천시와 승주군을 통합하여 도농복합형의 새로운 순천시가 되었다. 2003년 승주읍과 10면 12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순천김씨는
1985년에는 11,092가구 45,622명, 2000년에는 16,178가구 52,258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62,916명으로 조사되었다. 참고사항
전서공파(典書公派), 지평공파(持平公派), 묵재공파(黙齋公派), 절재공파(節齋公派), 전직공파(殿直公派), 영주공파(寧州公派), 사예공파(司藝公派), 양경공파(襄景公派), 참의공파(參議公派), 판사공파(判事公派), 익찬공파(翊贊公派), 정랑공파(正郞公派), 판서공파(判書公派), 승지공파(承旨公派), 감찰공파(監察公派), 군수공파(郡守公派), 횡성공파(橫城公派), 상의원정공파(尙衣院正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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