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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김씨(安東金氏) - 신
유래
시조 : 김선평(金宣平)
시조 김선평(金宣平)은 신라말 경애왕 때 고창(안동)의 성주로 927년(신라 경순왕 원년)에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살해하자 930년(경순왕 4년)에 권행, 장정필과 함께 향병을 모으고 고려 태조를 도와 고창(안동)군에서 견훤을 토벌하여 병산대첩의 전공을 세운 삼태사(三太師) 중의 한 사람이다. 왕건이 고려를 개국할 무렵 고려에 귀순하여 개국공신이되고 벼슬이 태광태사(太匡太師)가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안동으로 하였으며, 조선 중기에 도정을 지낸 김극효(金克孝)를 중시조(1세)로 하고 있다. 조선 후기 세도정치의 주요 가문으로 구 안동김씨와 구별해 신 안동김씨라고도 한다. 장동김씨(壯洞金氏) 또는 장김(壯金)라고도 불린다. 삼국통일에 공을 세운 김선평(金宣平)은 고려 태조로부터 성을 하사 받은 안동권씨의 시조 권행, 안동장씨의 시조 장정필을 모시기 위해 983년(고려 성종 2년)에 세운 삼태사묘(三太師廟)에 모셔져 있다. 삼태사묘는 경북 안동시 북문동 24번지에 있으며 매년 2월과 8월에 제향한다. 인물
'신안동'을 가리켜 '금관자(金貫子)가 서 말'이라고 하여 큰 벼슬을 많이 내었다는 비유로 삼는다.
김상용(尙容) : 김극효의 아들. 우의정을 지냈다. 김상헌(尙憲) : 김상용의 동생. 좌의정을 지냈다. 후손이 세도가문으로서의 주류를 이루어 이들을 '장김(壯洞金氏)'이라고도 한다. 김조순(祖淳) : 딸이 순조비가 되면서 김달순(達淳), 김문순(文淳), 김희순(羲淳), 김유근, 김교근(敎根) 등 일족이 정승, 판서를 독차지하게 되었다. 김조근(祖根) : 헌종의 장인. 호위대장을 지냈다. 김병연(炳淵) : 김삿갓으로 유명하다. 김옥균(玉均) : 구한말의 정치가이다. 김좌진(佐鎭) : 독립운동가이며 장군이다. 김두한(斗漢) : 김좌진의 아들. 국회의원을 지냈다. 영의정 : 김좌근(左根), 김흥근(興根), 김병학(炳學), 김병국(炳國), 김병시(炳始) 등이있다. 판서 : 김수근(洙根), 김보근(輔根), 김병기(炳冀), 김병주, 김병덕(炳德), 김병지(炳地), 김병교(炳喬) 등 수십명이 있다. 숙종후궁 영빈 김씨 순조비 순원왕후 헌종비 효현왕후 철종비 철인왕후 혜령군(태종의 서자)사위 김수영 혹은 김수녕(金壽寧) 명온공주(순조의 장녀)부마 김현근(金賢根) 복온공주(순조의 차녀)부마 김병주(金炳疇)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익정(金益精) : 문과(文科) 태조5년(1396) 식년시 을과(乙科) 장원급제
김성시(金盛始, 1646 丙戌生) : 문과(文科) 숙종7년(1681) 알성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시헌(金時獻, 1560 庚申生) : 문과(文科) 선조21년(1588)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홍도(金弘度, 1524 甲申生) : 문과(文科) 명종3년(1548)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주우(金柱宇, 1598 戊戌生) : 문과(文科) 인조2년(1624) 정시2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노순(金魯淳, 1721 辛丑生) : 문과(文科) 영조40년(1764) 충량과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창협(金昌協, 1651 辛卯生) : 문과(文科) 숙종8년(1682) 증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주(金澍, 1512 壬申生) : 문과(文科) 중종34년(1539) 별시2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수항(金壽恒, 1629 己巳生) : 문과(文科) 효종2년(1651) 알성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수녕(金壽寧, 1436 丙辰生) : 문과(文科) 단종1년(1453) 식년시 을과(乙科) 장원급제 등 모두 1118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317명, 무과 61명, 생원진사시 716명, 역과 10명, 의과 5명, 음양과 2명, 율과 6명, 주학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항렬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
안동(安東)은 경상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대에는 창녕국(昌寧國)인 소국이었다. 신라가 이곳에 진출하여 고타야국(古陀倻國)으로 불렀고, 757년(경덕왕 16)에 고창군으로 개칭하고, 직령현·일계현·고구현을 영현으로 관할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안동부로 승격되었다가 후에 영가군으로 강등되었고, 995년(성종 14) 행정구역 개편 때 길주로 승격되었다. 그 뒤 몇 차례의 변화를 거쳐 1030년(현종 21)에 안동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1197년(명종 27)에 도호부로 개칭되었고, 1204년(신종 7)에 대도호부로, 1308년(충선왕 즉위)에 복주목(福州牧)으로 계속 승격되었으나, 1310년(충선왕 2)에 복주로 강등되었다.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목으로 승격되었으며, 1361년에 다시 안동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383년(우왕 9)에는 안동도로 개편하였다가 1388년에 부사로 환원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안동대도호부로서 경주와 함께 경상좌도(慶尙左道)의 대읍으로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석릉(石陵)·고령(古寧)·화산(花山)·능라(綾羅)·지평(地平)·일계(一界)·고장(古藏) 등의 별호가 있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안동부 안동군, 1896년에 경상북도 안동군이 되었다. 1931년 읍면제를 실시함에 따라 안동군 부내면이 안동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63년에 안동읍이 신안동시로 승격되었다가 곧 안동시로 개칭하였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안동김씨(신)는
1985년에는 5,047가구 21,554명, 2000년에는 15,068가구 47,702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0명으로 조사되었다. 참고사항
- 2015년 인구수가 없는 이유는 구 안동김씨와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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