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김숙(金淑)
시조 김숙(金淑)은 고려 명종때 호남염찰사(廉察使)로 영암에 침입한 왜적을 토평하는데 공을 세워 영암군(靈巖君)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영암으로 하였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응권(金應權) : 문과(文科) 명종7년(1552) 식년시 을과(乙科)
김삼달(金三達) : 문과(文科) 중종38년(1543) 식년시 병과(丙科)
김희련(金希鍊) : 문과(文科) 중종38년(1543) 식년시 병과(丙科)
김삼달(金三達) : 문과(文科) 명종1년(1546) 중시 병과(丙科)
김삼택(金三宅) : 문과(文科) 중종29년(1534) 식년시 갑과(甲科)
김의선(金義善, 1850 庚戌生) : 문과(文科) 고종24년(1887) 별시3 병과(丙科)
김시태(金始兌, 1642 壬午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16년(1690) 증광시 삼등(三等)
김시태(金始兌, 1642 壬午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17년(1691) 증광시 삼등(三等)
김영순(金永淳, 1874 甲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31년(1894) 식년시 삼등(三等)
김삼택(金三宅)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26년(1531) 식년시 이등(二等)
등 모두 11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6명, 생원진사시 5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세거지
경기도 개풍군 남면 동방리
항렬자
24世
현(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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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世
종(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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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世
형(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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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世
이(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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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世
일(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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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世
영(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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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世
권(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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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世
광(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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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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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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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5世孫은 24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영암
영암(靈巖)은 전라남도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마한의 영토였다가 삼국시대에는 백제 땅으로 월내군(月奈郡)으로 불리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영암군(靈巖郡)이 되었다. 995년(고려 성종 14)에는 낭주(郎州)로 개칭하고 안남도호부가 설치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낭주를 폐하고 안남도호부가 전주로 옮겨감으로 영암군으로 환원되었다. 낭산(朗山)이라는 별호가 있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 영암군이 되었고, 1896년에 전라남도 영암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영암면과 시종면 등 11개 면으로 분면되었고, 1979년 영암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영암김씨는
1985년에는 579가구 2,469명, 2000년에는 787가구 2,568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2,558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