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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천김씨(永川金氏)
    유래
    영천김씨는 김알지의 후손이면서 시조를 다르게 하고 서로 혈연관계를 밝힐 수 없는 네 계통이 있다.

    - 김천일(金天佾) 계 : 김천일은 신라 경순왕의 셋째 아들인 김명종의 17세손이다.

    - 김온(金溫) 계 : 영천에서 살다가 김온에 이르러 평안북도 가산으로 이사하여 살면서 조상의 고향인 영천을 본관으로 하였다.

    - 김지칙(金之則) 계 : 김지칙은 신라 경순왕의 후손이라고 한다.

    - 김영장(金永長) 계
    검교 한성부윤을 지낸 김영장(漢城府庶尹)이 1054년(연산군 10)에 일어난 갑자사화(甲子士禍)로 세상이 혼란해지자 영천에서 황해도 평산군 보산면 두무리(斗武里)로 이주하여 숨어 살면서 고향인 영천을 본관으로 하였다.
    김영장의 묘소는 황해도 평산군 남천읍 두무리에 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용기(金龍基, 1811 辛未生) : 문과(文科) 헌종9년(1843) 식년시 병과(丙科)
     김관효(金觀孝, 1817 丁丑生) : 문과(文科) 헌종9년(1843) 식년시 병과(丙科)
     김명래(金命來, 1666 丙午生) : 무과(武科) 숙종25년(1699) 식년시 병과(丙科)
     김지순(金之純, 1777 丁酉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7년(1807) 식년시 이등(二等)
     김기국(金器國, 1737 丁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44년(1768) 식년시 삼등(三等)
     김석로(金錫魯, 1704 甲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23년(1747) 식년시 삼등(三等)
     김언형(金彦衡, 1781 辛丑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헌종10년(1844) 증광시 삼등(三等)
     김대창(金大昌, 1721 辛丑生) : 역과(譯科) 영조16년(1740) 증광시 ()
     김대징(金大徵, 1712 壬辰生) : 역과(譯科) 영조5년(1729) 식년시 ()
     김대관(金大寬, 1709 己丑生) : 역과(譯科) 영조5년(1729) 식년시 ()
    등 모두 19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2명, 무과 1명, 생원진사시 4명, 역과 3명, 음양과 7명, 율과 2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항렬자

     김온계
    17世
    돈(燉)
    18世
    재(載)
    19世
    용(鏞)
    20世
    영(泳)
    21世
    간(幹)
    22世
    -
    23世
    -
    24世
    -
    25世
    -
    26世
    -

     김영장계
    11世
    곤(坤)
    12世
    응(應)
    13世
    주(周)
    14世
    근(根)
    15世
    병(炳)
    16世
    범(範)
    17世
    -
    18世
    -
    19世
    -
    20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2世孫은 11代孫)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영천
    영천(永川)은 경상북도 영천시 일원의 옛 지명으로 고대 골벌국(骨伐國)이었던 것을 초기 신라 때에는 절야화군(切也火郡)이라 하였고 757년(신라 경덕왕 16)에는 임고군(臨皐郡)으로 개칭하였다. 925년(경애왕 2)에 고울부(高鬱府)로 고쳐 불렀고, 도동현(道同縣)·임천현(臨川縣)·맹백현·이지현(梨旨縣) 등의 현들을 관할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는 도동·임천현을 합하여 영주군(永州郡)이라고 불렀으며, 995년(성종 14)에 자사(刺史)를 파견하였다. 1018년(현종 9)에 경주(慶州)에 편입되었다가, 1172(명종 2)에는 감무(監務)를 두면서 독립하였고, 후에 주(州)로 승격되었다. 1414년(태종 14) 영천군으로 개칭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영천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상북도 영천군이 되었다. 1914년에 군면 폐합으로 신녕군(新寧郡)이 영천군으로 폐합되어 영천면을 신설하였다. 1937년 영천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81년에는 영천읍이 시로 분리 승격했고, 1995년 영천군을 영천시에 통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영천김씨는
    1985년에는 767가구 3,158명, 2000년에는 1,100가구 3,540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2,785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