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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천강씨(衿川姜氏)
유래
시조 : 강여청(姜餘淸)
강여청(姜餘淸)은 신라시대에 문하시랑을 지냈다. 그의 5세손인 강감찬의 아버지 강궁진(姜弓珍)을 1세조로 하고 있다. 진주강씨에 의하면 강여청의 후손 강감찬(姜邯贊) 장군(시호는 인헌공)을 파조로 하는 진주강씨 인헌공파를 금천강씨로 부른다. 강감찬의 출생지가 금천(衿川)이므로 금천강씨로 부른다. 인물
조선 인조 때 우의정을 지냈고 예학(禮學)에 정통한 강석기(姜碩期)를 들 수 있는데, 그의 딸이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의 빈(嬪)으로, 소현세자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죽자 세자빈은 인조로 부터 사약을 받고 죽었다. 선조 때의 석학인 강항(沆)은 공조좌랑, 형조좌랑 등을 지내고 정유재란 때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왜군의 포로로 일본으로 잡혀가 일본 학자들에게 성리학을 가르쳐 주는 한편, 적의 군사정보 등을 고국에 전했는데, 일본 성리학의 원조로 일컬어진다. 이 밖에 숙종 때 대사간을 지내고 진선군(晋善君)에 봉해진 강석빈(姜碩賓), 부교리와 여러 청관직(淸宦職)을 지내고 시인으로도 알려진 강박(姜樸), 역시 시문에 뛰어나고 문집 <모헌집(慕軒集)>을 남긴 숙종 때의 강필신(姜必愼) 등이 있다. 또한 구한말 <황성신문> 발행인의 한 사람인 강위(姜瑋)가 있다. 근세인물로는 일본인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에게 수류탄을 던진 강우규(姜宇奎) 의사와 명창 강장완(姜章浣) 등을 꼽을 수 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강숙요(姜叔○) : 문과(文科) 성종23년(1492)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강석기(姜碩期, 1580 庚辰生) : 문과(文科) 광해군8년(1616) 증광시 병과(丙科) 강희(姜曦) : 문과(文科) 세종21년(1439) 친시 을과(乙科) 강찬(姜燦, 1557 丁巳生) : 문과(文科) 선조16년(1583) 알성시 병과(丙科) 강봉휴(姜鳳休, 1694 甲戌生) : 문과(文科) 영조11년(1735) 증광시 병과(丙科) 강흡(姜○, 1607 丁未生) : 무과(武科) 인조14년(1636) 별시 병과(丙科) 강석기(姜碩期, 1580 庚辰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광해군4년(1612) 식년시 삼등(三等) 강찬(姜燦, 1557 丁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15년(1582) 식년시 이등(二等) 강문수(姜文粹, 1619 己未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인조20년(1642) 식년시 이등(二等) 강문명(姜文明, 1613 癸丑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인조11년(1633) 식년시 삼등(三等) 등 모두 23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5명, 무과 1명, 생원진사시 17명) 항렬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서울특별시
금천(衿川)은 현재 시흥·과천·광명·군포시 일대를 통괄하는 옛 지명이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영토였으며, 삼국시대에는 잉벌노현(仍伐奴縣)·장항구현(獐項口縣)·율목군(栗木郡)으로 불리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는 곡양현(穀壤縣)·장구군(獐口郡)·율진군(栗津郡)으로 개칭되었다. 940년(태조 23)에는 곡양현은 금주(衿州: 衿陽)로, 율진군은 과주(果州)로 이름이 바뀌었다. 995년(성종 14) 금주에 단련사(團練使)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에 폐지하였다. 1018년(현종 9)에 금주는 수주(樹州: 富平)의 속현이 되고 과주는 광주(廣州)의 관할이 되었다가, 1172년(명종 2) 감무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금주는 시흥(始興)이라 별칭하였고, 과주는 부안(富安) 또는 부림(富林)이라고도 하였다. 과주는 1413년(태종 13) 과천현으로 개편되었다가 1414년에는 금주와 통합되어 금과현이라 하였으나 곧 폐지되었다. 금주는 다시 양천현과 합하여 금양현이라 하였다가 이듬해 따로 분리되면서 금천현(衿川縣)으로 명칭을 바꾸고 현감이 파견되었다. 1456년(세조 2)에도 잠시 과천현과 병합된 적이 있으며, 1795년(정조 19)에는 금천군의 이름을 시흥현(始興縣)으로 바꾸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금천군이 되어 인천부에 속하였다가 1896년 경기도 관할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과천군과 안산군의 일부가 시흥군에 편입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었고 1979년에 시흥군의 남면이 군포읍으로 승격되었고 1981년에는 소하읍과 광명출장소가 광명시로 승격되면서 시흥군에서 분리, 독립하였다. 1989년에는 군포와 의왕읍이 각각 시로 승격되었고, 시흥군이 폐지되면서 소래읍·군자면·수암면이 통합되어 시흥시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금천강씨는
1985년에는 177가구 760명, 2000년에는 668가구 2,064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973명으로 조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