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김중재(金重材)
시조 김중재는 조선시대에 관직이 수의부위(修義副尉)에 올랐다.
김중재의 선조에 대해서는 고증할 수 없으나, 웅신백사적기(熊神伯事蹟記)에 의하면 신라 말에 견훤(甄萱)이 수차에 걸쳐 신라를 침범하자 웅신백(熊神伯)이 경애왕(景哀王 : 신라 55대)의 명을 받아 5천 장병을 거느리고 출정하여 이를 격퇴시키고 돌아오자 왕이 그 공을 가상히 여겨 웅신현(熊神縣:웅천)을 식읍으로 하사하였다고 한다. 그 후로 후손들이 웅천에 정착하여 살아오면서 웅천을 본관으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
- 묘소는 개성에 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취행(金就行, 1739 己未生) : 문과(文科) 정조4년(1780) 식년시 병과(丙科)
김윤기(金允基, 1773 癸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1년(1801) 식년시 삼등(三等)
김익기(金益基, 1773 癸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5년(1805) 증광시 삼등(三等)
김홍해(金弘海, 1718 戊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29년(1753) 식년시 삼등(三等)
김홍한(金弘漢, 1726 丙午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29년(1753)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5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명, 생원진사시 4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세거지
경기도 개풍군 북면 용현리
항렬자
15世
훈(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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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世
균(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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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世
종(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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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世
순(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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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世
임(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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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世
열(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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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世
규(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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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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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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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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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6世孫은 15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남도 창원
웅천(熊川)은 경상남도 창원시(昌原市)·진해시(鎭海市) 일부에 속한 옛 지명으로 삼국시대인 신라 때에는 웅지현(熊只縣)이었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웅신현(熊神縣)으로 개칭되어 의안군(義安郡: 昌原)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금주(金州)의 속현으로 합병되었다. 조선에 들어 세종대에 첨절제사가 설치되고, 문종 때에 웅천현(熊川縣)으로 독립했으며, 이 때 완포현(莞浦縣)을 병합하였다. 1510년(중종 5)에 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곧 현으로 복구되었다. 웅천의 별호는 병산(屛山)·웅산(熊山)이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웅천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상남도 웅천군이 되었다. 1910년 마산부가 설치되면서 마산부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창원군에 편입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웅천김씨는
1985년에는 128가구 461명, 2000년에는 119가구 347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219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