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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성김씨(月城金氏)
    유래
     시조 : 김이진(金怡珍)
    월성김씨는 시조를 달리하는 토산계과 월성계 두 계통이 있다.

    [월성(月城) 계]
    신라 경순왕의 셋째 아들 김명종(金明宗)의 16세손 김남길(金南吉 : 고려 때 평장사를 역임)의 첫째 아들인 조선시대 유생(儒生) 김이진(金怡珍)을 1세 조상으로 한다.

    [토산(兎山) 계]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說)의 15세손 김광우(金光佑)를 1세조로 한다. 김광우는 조선 세종 때 덕천군수(德川郡守)로 있으면서 조정에 직간하다가 평안도 성천군 통천으로 유배되어 살았다는데 후손들이 고향인 월성을 본관으로 하였다고 하며, 일설에 의하면 토산김씨(兎山金氏)인데 월성김씨로 본관을 바꾸었다고도 한다.
    인물
    [월성계]
    - 김응복(金應福) :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 김세천(金世天)의 둘째 아들로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하여 전투에서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으로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지내고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되었다.
    - 김윤해(金允諧) : 김응복의 아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했다.

    [토산계]
    - 김지현(金智賢) : 어모장군(禦侮將軍) 김중보(金重寶)의 아들. 효성과 학행으로 이름을 떨쳐 세칭 관서대현(關西大賢)으로 일컬어졌다.
    - 김자감(金自堿) : 1615년(광해군 7)에 정려(旌閭)를 받아, 훈련원 봉사(訓鍊院奉事)를 지냈다.
    세거지
    경북 영일군 구룡포읍
    경북 영일군 동해면 신정동, 상정동
    경북 영일군 신광면 흥곡동, 지행면 신계리
    경북 영천군 임고면 양평동, 황강동
    경북 영일군 기계면 탑정동, 성법동
    평남 성천군 통선면 남원리
    항렬자
    46世
    관(灌)
    47世
    수(秀)
    48世
    희(希)
    49世
    세(世)
    50世
    응(應)
    51世
    해(諧)
    52世
    우(宇)
    53世
    시(是)
    54世
    여(汝)
    55世
    경(慶)
    56世
    만(萬)
    57世
    재(載)
    58世
    동(東)
    59世
    홍(洪)
    60世
    민(玟)
    61世
    하(河)
    62世
    제(濟)
    63世
    주(柱)
    64世
    병(炳)
    65世
    기(基)
    66世
    진(鎭)
    67世
    원(源)
    68世
    모(模)
    69世
    환(煥)
    70世
    규(圭)
    71世
    석(錫)
    72世
    순(淳)
    73世
    영(榮)
    74世
    -
    75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47世孫은 46代孫)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
    월성(月城)은 경상북도 남동부에 위치한 경주(慶州)의 옛 지명으로 기원전 57년에 6촌(六村)이 연합하여 고대국가를 형성, 국호를 서라벌(徐羅伐)·사로(斯盧)·사라(斯羅)로 하고, 수도를 금성(金城)이라 하였다. 65년(신라 탈해왕 9) 시림(始林)에서 김씨 시조가 탄생하여 국호를 계림(鷄林)으로 칭하기도 하였으나, 별칭으로 사용하였다. 307년(기림왕 10)에 최초로 국호를 신라(新羅)로 하였다. 935년(고려 태조 18)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이 왕건에 항복하자 경주로 개칭하고 식읍을 주었고, 그를 사심관으로 삼았다. 비로소 처음으로 경주라는 명칭이 생겼다. 987년(성종 6) 동경(東京)으로 개칭하고 유수(留守)를 두어 영동도(嶺東道)에 속하게 하였다. 1008년(목종 11) 때 낙랑군(樂浪郡)이라 별칭하다가 1030년(현종 21) 삼경(三京)의 제도가 실시되자 동경(東京)을 설치하고 충렬왕 때 계림부(鷄林府)로 개편하였다. 1202년(신종 5) 경주 야별초의 반란으로 지경주사(知慶州事)로 강등되었다가 1219년(고종 6) 동경으로 환원되었다. 1413년(태종 13) 계림부를 경주부로 개칭한 이후 1415년 병마절도사영을 두었다가 1417년 울산으로 이전하였다. 1637년(인조 15)에 속현인 자인현이 분리 독립하였다. 1895년(고종 32) 군면 폐합으로 경주군이 되었고, 1955년 경주읍과 내동면 전역, 천북면과 내남면 일부가 통합되어 경주시로 승격했으며, 경주군은 월성군으로 개칭되었다. 1989년에는 월성군이 경주군으로 개칭되었다. 1955년에는 경주군과 통합하여 시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월성김씨는
    1985년에는 8,013가구 33,668명, 2000년에는 4,840가구 15,753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87,268명으로 조사되었다.
    참고사항
    월성계 계파 : 함흥파(咸興派), 송정파(松亭派), 송학파(松鶴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