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김상동(金尙銅)
시조 김상동(金尙銅)은 조선 명종 때 사직(司直:오위에 속한 정오품의 문무관벼슬)으로 있으면서 임금에게 여러 차례 시정을 요구하다가 은율로 유배되었다. 후에 사면되어 돌아오는 도중에 풍랑을 만나 평안북도 정주(定州)로 표류되었는데 그곳에 정착하여 살았다. 그후 후손들이 고향인 은율을 본관으로 하였다.
- 묘소는 평안북도 정주군 입표면(立表面) 삼대산(參大山)에 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명로(金命老, 1581 辛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 모두 1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항렬자
12世
호(虎)
|
13世
식(植) 동(東)
|
14世
훈(焄) 희(熙)
|
15世
배(培) 훈(塤)
|
16世
석(錫)
|
17世
순(淳) 연(淵)
|
18世
영(榮) 즙(楫)
|
19世
섭(燮) 환(煥)
|
20世
기(基) 용(墉)
|
21世
용(鎔) 호(鎬)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3世孫은 12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은율군
은율(殷栗)은 황해도 북서단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구려시대에는 율구(栗口) 또는 율천현(栗川縣)으로 불렸다가 고려 초에 은율(殷栗)로 고쳐졌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은율김씨는
1985년에는 216가구 755명, 2000년에는 62가구 315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88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