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김도(金道)
시조 김도(金道)는 김씨분종보(金氏分宗譜)에 의하면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으로 전하고 있으나 사적(事蹟)이 없기 때문에 확실한 세계(世系)를 고증할 수 없다. 그는 무평사(武評事)를 지냈으며 그의 후손들이 본관을 음죽(陰竹)이라 하였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진원(金振瑗, 1604 甲辰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윤(金潤)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김계화(金戒化, 1606 丙午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진표(金晉標, 1657 丁酉生) : 무과(武科) 숙종10년(1684) 정시 병과(丙科)
김용중(金龍重, 1829 己丑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11년(1874) 증광시 삼등(三等)
* 모두 5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4명, 생원진사시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북도 음성
음죽(陰竹)은 충청북도 음성군(陰城郡)과 경기도 이천시(利川市)의 일부 지역에 있던 곳이다. 본래 진한(辰韓)의 노람국(奴籃國)이 있었던 지역이었으며, 고구려 때 노음죽현(奴音竹縣)이라 하고, 757년(신라 경덕왕 16) 음죽현으로 고쳐서, 고려·조선 시대에도 그대로 따랐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음죽군으로 승격이 되었으나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군을 폐지하고 그 지역을 동면(東面)의 노평리(老坪里) 일부, 하율면(下栗面)의 총곡리(叢谷里) 일부, 상율면(上栗面)의 팔성리(八星里) 일부 및 석교촌(石橋村) 일부는 충청북도 음성군에 속하게 하였고, 나머지는 경기도 이천시에 병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음죽김씨는
1985년에는 0명, 2000년에는 8가구 28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44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