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김렴(金濂)
시조 김렴(金濂)의 자는 계온(季溫)으로 상산김씨 시조 김수(金需)의 18세손이며 첨정(僉正) 김수돈(金守敦)의 아들이다. 그를 시조로 본관을 제주(濟州)로 하게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그는 1544년(중종 3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한산군수(韓山郡守)를 지낸 기록이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에 보인다. 그가 급제 당시 본관이 상주(尙州=商山)이고 그의 선대(先代)에서 상산(商山)에 세거(世居)한 점을 미루어 보아 그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제주(濟州)로 하게 된 듯하다.
조부는 김광범(金光範), 증조부는 김자철(金自哲)이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반(金磻, 1629 己巳生) : 무과(武科) 효종3년(1652) 증광시 을과(乙科)
김진성(金振聲, 1597 丁酉生) : 무과(武科) 인조2년(1624) 증광시 병과(丙科)
김기용(金紀鎔, 1599 己亥生) : 무과(武科) 인조2년(1624) 증광시 병과(丙科)
김양필(金良弼)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5년(1510)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4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3명, 생원진사시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제주도
제주(濟州)는 한반도(韓半島)의 남서 해상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대의 섬이다. 명칭도 도이(島夷)·주호(州胡)·탐모라(耽牟羅)·섭라(涉羅)·탁라(乇羅)·탐라(耽羅)·제주(濟州) 등 시대에 따라 다르게 불려왔다. 신라의 속국이었던 탐라국(耽羅國)은 938년(태조 21) 고려의 속국이 되었고, 1105년(숙종 10)부터는 군을 설치하여 직접 다스리다가, 1153년(의종 7) 군을 현으로 고쳤으며, 1211년(희종 7)에 탐라군을 제주로 개편하였다. 1271년(원종 12)에 삼별초(三別抄)가 제주도에 웅거하면서 몽골에 마지막까지 항쟁을 벌이다가 1273년에 패한 후 제주도는 원나라의 직할지가 되어 목마장(牧馬場)이 설치되었다. 그 후 약 1세기 동안 제주도는 고려와 원나라 사이에 소속이 여러 차례 바뀌는 복잡한 과정을 겪다가 1367년(공민왕 16)에 완전히 고려에 회복되었다. 조선 태종 때 오랫동안 전래되어 온 성주(星主)·왕자(王子)의 칭호가 폐지되고 실질적인 행정력 속에 포함되었다. 1416년(태종 16) 한라산을 경계로 산북(山北)을 제주목(濟州牧), 산남(山南)을 양분하여 동쪽에 정의현(旌義縣), 서쪽에 대정현(大靜縣)을 설치하고 전라도(全羅道)에 소속시켜 통치하였다. 1864년(고종 1) 대정·정의 양현을 군으로 승격시켜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 관할 하에 두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23부제(府制)를 실시함에 따라 제주부를 설치하여 정의군·대정군을 관할하도록 했다. 1896년에 다시 13도제(道制) 실시로 전라남도 제주군·정의군·대정군이 되었다. 1914년에 군면 폐합으로 정의군·대정군과 완도군 추자면(楸子面)이 제주군에 병합되어 제주군은 제주도 전역을 관할하게 되었다. 1915년 도사제(島司制)로 개편되어 제주도(濟州島)가 되었고, 1946년 도제(道制) 실시로 전라남도 관할 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1946년에 비로소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어 제주도(濟州道)로 승격하고 북제주군 및 남제주군을 신설했다. 1955년에 제주읍을 시로 승격하였고, 1956년에는 서귀면·대정면·한림면을 각각 읍으로 승격하고 한경면을 신설하였다. 1980년에 애월면·구좌면·남원면·성산면을 읍으로 승격했으며, 1981년에 서귀읍과 중문면을 합하여 서귀포시로 승격하였다. 1985년에 조천면을 읍으로, 1986년에 구좌읍 연평출장소를 우도면으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제주김씨는
1985년에는 49가구 270명, 2000년에는 233가구 744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409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