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김철(金哲)
시조 김철(金哲)은 신라 제46대 문성왕(文聖王)의 5세손 벽상삼한공신(璧上三韓功臣) 김락(金樂)의 동생으로 전하고 있으나 문적(文蹟)이 없기 때문에 세계(世系)를 상고할 수 없으며 그 후손들이 본관을 중화(中和)로 하였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근(金根) : 문과(文科) 세조6년(1460) 평양별시 삼등(三等)
김상민(金尙敏, 1637 丁丑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현종7년(1666) 식년시 삼등(三等)
김광표(金光彪, 1675 乙卯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11년(1735) 증광시 삼등(三等)
김태호(金泰顥, 1702 壬午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20년(1744) 식년시 삼등(三等)
김일(金鎰, 1532 壬辰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19년(1564) 식년시 삼등(三等)
김근(金根)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세종29년(1447) 식년시 삼등(三等)
김윤주(金允周) : 역과(譯科) 중종2년(1507) 식년시 ()
* 모두 7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명, 생원진사시 5명, 역과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평안남도 중화
중화(中和)는 평안남도 남단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구려 때에는 가화압(加火押)이라 불리었다. 통일신라 헌덕왕 때 당악현(唐嶽縣)이라 하였다. 고려 초에 서경(西京)에 편입시켰다가 1136년(인종 14)에 9촌(村)을 합하여 중화현을 만들고 영(令)을 두어 서경의 속현이 되었다. 1332년(충숙왕 9) 군으로 승격하였으며 공민왕 때 다시 지군사(知郡事)로 승격되었다. 1592년(선조 25)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중화군이 되었으며, 1896년 평안남도 중화군으로 개편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상원군(祥原郡)을 통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중화김씨는
1985년에는 106가구 403명, 2000년에는 135가구 426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528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