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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김씨(昌原金氏)
    유래
     시조 : 김을진(金乙珍)
    시조 김을진(金乙珍)은 신라 경순왕의 셋째 아들인 김명종(金鳴鐘) 17세손으로 처음 이름은 김광준(金光俊)이다. 고려에서 벼슬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태자첨사(太子詹事)로 로 동궁(東宮)의 사무(事務)를 관장하였고, 홍건적(紅巾賊)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워 회원군(檜原君, 창원)에 봉해짐으로서 후손들이 본관을 창원으로 하였다.

    참고로 김을진의 아들 김원(金元)을 시조로 하는 문헌도 있다.
    인물
    김을진의 아들 김원(金元)은 고려 충혜왕 때 참지 정사를 지냈고, 상호군으로 피난 가는 왕을 호종하여 1등 공신이 되었다. 그 뒤 충정왕 때에는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올라 공을 세워 의창부원군(義昌府院君)에 봉하여졌다. 이 때문에 창원 김씨의 시조를 김을진으로 할 것인지 김왈원(金曰元, 초명은 김원)으로 할 것인지 논란이 있다.

    김원의 손자로 참판을 역임한 김갱(金鏗)의 아들 3형제 중 장남 김맹창(金孟昌)은 호가 독곡(獨谷)으로 세종 때 문과에 등과하여 군수를 지냈고, 그의 후손에서 부안파(扶安派)와 연천파(連川派)를 이루었다.

    김갱의 차남 김중창(金仲昌)은 용안 현감을 지냈고 그의 후대에서 금천파(金川派)로 갈라졌다. 셋째 아들 김계창(金季昌)은 1461년(세조 7) 문과에 급제하였고, 예종 때 춘추관·홍문관 직제학을 거쳐 1481년(성종 12) 이조 참판을 지냈으며, 김계창의 후대에서 파주파(破州派)·상주파(尙州派)·창원파(昌原派) 등으로 나누어졌다.

    창원파로 나누어진 것은 김만서(金晩瑞)의 후손으로 김녕김씨로 본관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녕김씨는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說)의 후손들이며, 그들의 족보에 창원김씨 창원파에 대한 기록이 없어 불문명하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계창(金季昌) : 문과(文科) 세조12년(1466) 발영시 이등(二等)
     김윤화(金允和) : 문과(文科) 연산군10년(1504) 식년시 병과(丙科)
     김계창(金季昌) : 문과(文科) 세조8년(1462) 식년시 을과(乙科)
     김이길(金頤吉)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김광익(金光翼, 1549 己酉生) : 무과(武科) 선조16년(1583) 별시 병과(丙科)
     김득남(金得男, 1599 己亥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황(金璜, 1646 丙戌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을과(乙科)
     김의현(金義賢, 1573 癸酉生) : 무과(武科) 선조35년(1602) 별시 병과(丙科)
     김근수(金根洙)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헌종6년(1840)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9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3명, 무과 5명, 생원진사시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세거지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동리동
    경상북도 상주시 외남면 흔평리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행중리
    황해도 금천군 일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남도 창원
    창원(昌原)은 경상남도 남쪽에 위치하는 산업도시이며 도청소재지이다. 고대에는 금관가야(金官伽倻)에 속했으나 신라가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굴자군(屈自郡)이 설치되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의안군(義安郡)으로 이름을 바꾸고, 합포현(合浦縣: 馬山)·웅신현(熊神縣: 熊川)·칠제현(漆隄縣: 漆原)을 영현으로 관할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금주(金州: 金海)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뒤에 감무가 파견되면서 독립되었다. 1274년(원종 15)과 1281년(충렬왕 7)에 원나라와 고려 연합군의 일본 정벌 때 창원지방은 합포를 중심으로 연합군의 기지가 되었다. 그 공으로 1282년에 의안군이 의창현(義昌縣)으로, 합포현이 회원현(會原縣)으로 승격되었다. 1408년(태종 8)에 회원현을 병합하여 창원부(昌原府)로 승격되고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영이 설치되었으며, 1413년에는 창원도호부(昌原都護府)가 되었다. 임진왜란 직후인 1601년(선조 34)에 창원대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603년(선조 36)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영이 진주로 옮겨갔다. 1661(현종 2)~70년(현종 11)에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창원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상남도 창원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창원군에 다시 편입되었다. 1980년에 마산시 의창동을 편입하여 창원시로 분리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창원김씨는
    1985년에는 889가구 3,319명, 2000년에는 983가구 3,094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2,950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