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김치제(金致濟)
시조 김치제(金致濟)는 김씨분종보(金氏分宗譜)에 의하면 신라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으로 전하고 있으나 기록이 없어서 확실한 세계(世系)를 고증할 길이 없다. 그는 1469년(조선 예종 1) 추장문과(秋場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벼슬이 선교랑(宣敎郞)에 이르렀다. 그의 후손들이 본관을 청산으로 하였다.
- 김사한(金士翰)의 후손 또는 나주김씨(羅州金氏)와 동원으로 전하는 문헌도 있다.
인물
만산(晩山) 김유수(金裕壽)는 1727년(조선 영조 3) 사마시에 급제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 결국 임천에 은거하며 독서를 즐겨 많은 문집을 남겼다. 뒤에 나라에서 추천하여 영릉참봉을 제수했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주(金○, 1627 丁卯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김보(金輔, 1615 乙卯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희경(金喜慶, 1726 丙午生) : 음양과(陰陽科) 영조30년(1754) 증광시
* 모두 3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2명, 음양과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북도 옥천
청산(靑山)은 충청북도 옥천군(沃川郡)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는 신라 굴산현(屈山縣)이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 기산현(嗜山縣)으로 고치고, 940년(고려 태조 23)에 청상현으로 개칭하여 상주(尙州)에 속하게 하였다. 1414년(태종 14) 황간현(黃澗縣)과 합하여 황청현(黃靑縣)이라 하였으나, 후에 다시 분리해서 청산현으로 복구하였고,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청산군으로 승격하였다가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옥천군에 편입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청산김씨는
1985년에는 107가구 441명, 2000년에는 260가구 810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333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