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김학증(金學曾)
시조 김학증(金學曾)은 명나라 신종(新宗 : 제 14대 황제, 재위기간 : 1573∼1619) 때 때 등과(登科)하여 벼슬이 호부 상서(戶部尙書)에 이르고 요동에서 공을 세워 태원백(太原伯)에 봉해졌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김학증은 서기 1598년(명나라 신종 26) 복건성도어사(福建省 都御史)로 조선에 건너와 왜군과의 싸움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고 한다.
김학증의 아들 김평(金坪)은 기주 태원(太原) 사람으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하고 명나라가 망하자 1627년(조선 인조 4)에 조선으로 망명하여 김해 대종산 아래로 이주하여 살았으며 죽은 후 숙종 때 (戶曹參判) 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使)에 추증 되었다. 이후 후손들이 고향인 중국의 태원을 본관으로 하였다.
인물
김평의 아들 김성손(金性遜)이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추증되었으며, 손자 김민현(金敏賢)은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 겸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에 추증되었다.
김평의 현손(玄孫) 김성정(金成鼎)은 숙종 때 부사과(副司果)와 부호군(副護軍)을 거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겸 오위장(五衛將)을 지냈고, 그의 동생 김구정(金九鼎)은 통덕랑(通德郞)에 올랐으며, 막내 김중정(金重鼎)은 효행과 학덕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외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른 김두일(金斗鎰)고 김두조(金斗祚)가 유명했고, 김한성(金漢城)은 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에 추증되어 가문을 더욱 빛냈다.
항렬자
11世
상(相) 영(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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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世
환(煥) 형(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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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世
규(圭) 재(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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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世
종(鍾) 현(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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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世
영(泳) 택(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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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世
동(東) 목(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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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世
병(炳) 희(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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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世
기(基) 순(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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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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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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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2世孫은 11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중국(中國) 산서성(山西省)
태원(太原)은 중국 산서성(山西省: 서화현 지구급)의 성도(省都)이며 중공업도시이다. 태행산맥(太行山脈)과 여량산맥(呂梁山脈)에 둘러싸인 분지로 분하강(汾河江) 상류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 기자(箕子)가 상(商)나라 때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 받았던 땅으로 춘추시대의 진양(晉陽)에 해당된다. 중국 태원을 관향으로 삼는 성씨는 안씨가 유일하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태원김씨는
1985년에는 520가구 2,192명, 2000년에는 800가구 2,557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2,585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