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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음김씨(河陰金氏)
    유래
    하음김씨는 시조를 다르게 하는 두 계통이 있다.

    한 계통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說)의 후손으로 평장사 김태서(金台瑞)의 증손인 김효일(金孝逸)이 하음부원군(河陰府院君)에 봉해짐으로서 그 후손들이 본관을 하음으로 하였다.

    한 계통은 하음(현 강화)에서 여러대에 걸쳐 살아온 김희정(金希正)을 시조로 하며 그는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공조판서(工曺判書)에 이르렀다.

    그 외 김효일의 6대조로 태자소보(太子少保)와 공부시랑(工部侍郞)을 역임한 김경보(金景輔)를 시조로 기술한 문헌도 보이며, 강화김씨의 시조 김성(金晟)의 후손에서 분리된 계통으로 전하기도 한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종봉(金宗鳳, 1829 己丑生) : 문과(文科) 고종22년(1885) 별시 병과(丙科)
     김수(金璲, 1769 己丑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10년(1810) 식년시 삼등(三等)
     김순령(金舜齡)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4년(1549) 식년시 삼등(三等)
     김한승(金翰升, 1793 癸丑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22년(1822) 식년시 삼등(三等)
     김성언(金成彦, 1734 甲寅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50년(1774) 증광시 삼등(三等)
     김상일(金尙一, 1732 壬子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정조1년(1777) 증광시 삼등(三等)
     김관영(金寬○, 1853 癸丑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13년(1876) 식년시 삼등(三等)
     김기홍(金基洪, 1827 丁亥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헌종9년(1843) 식년시 일등(一等)
    * 모두 8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명, 생원진사시 7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항렬자

     김효일(金孝逸) 계
    13世
    元(원)
    14世
    昌(창)
    15世
    鎬(호)
    16世
    植(식)
    17世
    炳(병)
    18世
    -
    19世
    -
    20世
    -
    21世
    -
    22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4世孫은 13代孫)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
    하음(河陰)은 인천광역시 강화군(江華郡) 지역으로 고구려 때에는 동음내현(冬音奈縣) 또는 아음현(牙音縣)으로 불렸다가 통일신라 때 호음현(沍陰縣)으로 고쳐 해구군(海口郡)에 속하였다. 고려시대에는 태조 때 하음현(河陰縣)으로 고쳐 개성(開城)의 관할에 두었다. 1413년(태종 13) 현(縣)을 폐하고 강화(江華)에 통합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하음면을 간점면과 병합하여 하점면(河岾面)으로 개칭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하음김씨는
    1985년에는 156가구 620명, 2000년에는 158가구 503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391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