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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주김씨(海州金氏)
    유래
    해주김씨는 본관을 같이 하면서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다.

    [ 김문동 계]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으로 고려 말에 안렴사(按廉使)를 지내고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로 개성 두문동에 은거한 72현 중의 한 사람인 김사렴(金士廉, 구 안동김씨)을 원조로 하고, 그의 후손으로 전라도사(全羅都事)를 지낸 김문동(金文東)을 중시조로 한다.

    [김맹 계]
    조선 인조 때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지낸 김헌(金獻)이 남한산성을 축성할 때 직간(直諫)을 하다가 해주로 유배 되어 살았는데, 그의 7세손 김맹(金孟)이 평안도로 이주하여 살면서 조상의 전 세거지인 해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인물
    [ 김문동 계]
    김문동(金文東)의 아들 김우한(金右漢)이 1504년(연산군 10) 과거에 올라 목사(牧使)를 지냈고, 증손 김정(金鼎)은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校理), 이조참판(吏曹參判)을 거쳐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올랐으며, 김정(金鼎)의 손자 김대윤(金大胤)이 통례(通禮)를 지냈다.

    [김맹 계]
    김맹의 아들 김응(金膺)이 승의부위(承義副尉, 정 8품 무관의 품계)를 지냈으며, 손자 김세광(金世侊)은 선무랑(宣務廊)을 역임했고, 후손 김만겸(金萬兼)은 상호군(上護軍)을, 김계희(金啓凞)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정 3품 당산관의 품계)를 역임하였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우한(金佑漢) : 문과(文科) 연산군10년(1504) 별시 삼등(三等)
     김정(金鼎) : 문과(文科) 중종19년(1524) 별시 병과(丙科)
     김백(金伯, 1614 甲寅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성원(金聲遠, 1640 庚辰生) : 무과(武科) 숙종1년(1675) 증광시 병과(丙科)
     김현(金鉉, 1657 丁酉生) : 무과(武科) 숙종12년(1686) 별시 병과(丙科)
     김향남(金香男, 1603 癸卯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득남(金得男, 1607 丁未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천립(金天立, 1612 壬子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시흘(金時屹, 1654 甲午生) : 무과(武科) 숙종10년(1684) 정시 병과(丙科)
     김준달(金俊達, 1657 丁酉生) : 무과(武科) 숙종10년(1684) 정시 병과(丙科)
    등 모두 61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2명, 무과 9명, 생원진사시 8명, 역과 6명, 의과 21명, 음양과 9명, 율과 1명, 주학 5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세거지
    김문동계 : 개성파, 장성파
    나주파김맹계 : 선천파, 철산파, 안주파
    항렬자

     김문동 계
    19世
    鍾(종)
    20世
    洛(락)
    21世
    柱(주)
    22世
    炳(병)
    23世
    在(재)
    24世
    鎭(진)
    25世
    -
    26世
    -
    27世
    -
    28世
    -

     김맹 계
    66世
    植(식)
    勳(훈)
    67世
    炳(병)
    坤(곤)
    68世
    垕(후)
    鎬(호)
    69世
    鎭(진)
    泳(영)
    70世
    濬(준)
    根(근)
    71世
    相(상)
    炳(병)
    72世
    烈(열)
    壎(훈)
    73世
    基(기)
    錫(석)
    74世
    銖(수)
    源(원)
    75世
    永(영)
    相(상)
    76世
    柱(주)
    杰(걸)
    77世
    -
    78世
    -
    79世
    -
    80世
    -
    81世
    -
    82世
    -
    83世
    -
    84世
    -
    85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67世孫은 66代孫)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해주
    해주(海州)는 황해도 남해안에 위치한 도청소재지이다. 고조선시대에 대방군(帶方郡)에 속하여 고죽(孤竹)으로 불리었다. 고구려 때에는 내미홀(內米忽) 또는 지성(池城)·장지(長池) 등으로 불리우다가, 748년(신라 경덕왕 7)에 폭지군(瀑池郡)으로 바뀌었다. 936년(고려 태조 19)에 태조가 남쪽이 바다와 접하고 있다고 하여 해주를 사명(賜名)했으며 성종 때 와서는 별호로 대령(大寧)·서해(西海)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983년(성종 2)에 해주목으로 승격된 데 이어 1018년(현종 9)에 안서도호부로 개편되었고 1247년(고종 34)년에는 다시 해주목으로 환원되었다. 1616년(광해군 8)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23년(인조 1)에 다시 목으로 복구되었다. 1895(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해주부가 설치되었고, 1896년 도제 실시로 황해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1945년 해주시로 개편되었다. 1954년 북한의 관제 정비로 황해남도에 편입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해주김씨는
    1985년에는 1,449가구 6,278명, 2000년에는 1,823가구 5,864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6,652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