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김익구
시조 김익구(자는 사겸)는 김두문의 아들로 1645년(조선 인조 23년)생이며 1675년(숙종 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벼슬이 현감에 이르렀다. 그러나 선조와 후손에 대해는 알 수가 없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정재(金鼎載, 1839 己亥生) : 문과(文科) 고종24년(1887) 별시3 병과(丙科)
김익구(金益九, 1645 乙酉生) : 문과(文科) 숙종1년(1675) 식년시 병과(丙科)
김세구(金世耉, 1671 辛亥生) : 무과(武科) 숙종21년(1695) 별시 병과(丙科)
김후영(金後榮, 1647 丁亥生) : 무과(武科) 숙종4년(1678) 증광시 병과(丙科)
김철화(金哲華, 1860 庚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19년(1882) 증광시 삼등(三等)
김적조(金迪祖, 1760 庚辰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7년(1807) 식년시 삼등(三等)
김상정(金祥廷, 1766 丙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5년(1805) 증광시 삼등(三等)
김재범(金載範, 1857 丁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19년(1882) 증광시 삼등(三等)
김응렴(金應濂, 1824 甲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19년(1882) 증광시 이등(二等)
김달희(金達禧, 1761 辛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5년(1805) 증광시 이등(二等)
* 모두 10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2명, 무과 2명, 생원진사시 6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화순
화순(和順)은 전라남도에 화순군 일원의 옛 지명으로 백제 때 잉리아현(仍利阿縣)이었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여미현(汝湄縣)으로 개칭하였고, 능성군(綾城郡: 綾州)에서 관할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 화순현(和順縣)으로 바꾸어 1018년(현종 9)에 나주(羅州)에 속하였다가 후에 능성현(綾城縣)에 편입시켰고, 1390년(공양왕 2)에는 감무를 파견하여 남평현(南平縣)을 겸하여 관리하게 하였다. 1394년(태조 3)에 남평현을 분리하는 대신 동복현감(同福縣監)을 겸임시켰고, 1405년(태종 5) 동복현을 병합하여 1407년(태종 7) 복순현(福順縣)이라 고쳐서 칭하였다. 1416년(태종 16) 다시 동복현을 독립시키고 능성현(綾城縣)에 병합하여 순성현(順城縣)이라 칭하다가 1418년(태종 18)에 각각 복구하였다. 1594년(선조 27)에도 능성에 편입되었다가 1611년(광해군 3) 다시 화순현을 분리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 화순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전라남도 화순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읍내면이 화순면으로 개칭되고 능주군을 화순군으로 개편되면서 동복군을 흡수하였다. 1963년 화순면이 화순읍으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화순김씨는
1985년에는 388가구 1,723명, 2000년에는 504가구 1,570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762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