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나광우(羅光佑)
시조 나광우(羅光佑)는 금성나씨의 시조 나총례(羅聰禮)의 15세손이다. 나광우의 아버지 나순이 고려 말에 수성군사를 지내고 내직으로 들어올 때 둘째 아들 나광우가 그곳에 눌러 살았기 때문에 후손들이 본관을 수성으로 하였다고 한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나학천(羅學川, 1658 戊戌生) : 문과(文科) 숙종9년(1683) 증광시 병과(丙科)
나이준(羅以俊, 1602 壬寅生) : 문과(文科) 인조24년(1646) 식년시 병과(丙科)
나홍서(羅弘緖) : 문과(文科) 세종17년(1435) 식년시 동진사(同進士)
나백령(羅百齡, 1679 己未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36년(1710) 증광시 이등(二等)
나학립(羅學立, 1664 甲辰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34년(1708) 식년시 삼등(三等)
나덕령(羅德齡, 1700 庚辰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2년(1726) 식년시 삼등(三等)
나진택(羅鎭澤, 1874 甲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28년(1891) 증광시 삼등(三等)
나이준(羅以俊, 1602 壬寅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인조13년(1635) 증광시 삼등(三等)
* 모두 8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3명, 생원진사시 5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세거지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 삼동마을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대구광역시
수성(壽城)은 대구광역시 수성동(壽城洞) 지역의 고려시대 지명이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위화군(喟火郡)과 달구화현(達句火縣: 達句伐)이었다. 757년(경덕왕 16)에 위화군을 수창군(壽昌郡)이라 하였고, 940년(고려 태조 23) 수창군은 수성군(壽城郡)으로 이름을 바꾸고, 1018년(현종 9)에는 경주(慶州)의 속현이었다가, 1390년(공양왕 2) 감무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조선 태조 때 대구(大丘)에 속하였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달성군에 속하면서 수성면이 되었다. 1938년 대구에 편입되었고, 1980년 대구직할시 수성구로 개편되었다. 현재는 대구광역시 수성구로 되어 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수성나씨는
1985년에는 894가구 3,547명, 2000년에는 1,752가구 5,447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3,001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