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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씨의 종류와 유래 성씨의 역사 족보 이야기 친인척 호칭법 국가 연대표 역대왕 연대표 성씨별 인구순위 본관별 인구순위 고사성어


     
    경주노씨(慶州盧氏, 안강)
    유래
     시조 : 노곤(盧坤)
    노곤(盧坤)은 도시조 노수(盧穗)의 여섯째 아들로 고려시대에 벼슬을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우고 안강백(安康伯)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안강(安康)으로 하게 되었다.

    그후의 후손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 계통을 밝힐 수 없으므로 조선시대에 첨정(僉正)을 역임한 노종선(盧從善)을 1세조로 하는 계통과 목사(牧使)를 지낸 노희선(盧禧善)을 각각 1세조로 하는 계통이 있다.
    인물
    노종선(盧從善)의 아들 노소종(盧紹宗)과 노계종(盧繼宗) 형제가 사직(司直)을 역임했고, 교수(敎授) 노희식(盧希軾)의 손자 노경임(盧景任)은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내외직(內外職)을 역임한 후 예조 정랑(禮曹正郞)이 되었다. 한편 부장(部將) 노희철(盧希轍)의 아들 노보세(盧輔世)는 동래 부사(東來府使)를 지냈으며, 그의 아들 노상건(盧尙健)은 부정(副正)을 역임하여, 현감(縣監)을 지낸 노경엽(盧慶燁), 부사(府使) 노협(盧協) 등과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노협(盧協, 1587 丁亥生) : 문과(文科) 인조15년(1637) 정시 병과(丙科)
     노애남(盧愛男, 1610 庚戌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노노생(盧老生, 1602 壬寅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노수함(盧守諴)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35년(1540) 식년시 삼등(三等)
     노팔원(盧八元, 1566 丙寅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39년(1606) 식년시 삼등(三等)
     노천서(盧天瑞, 1523 癸未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13년(1558) 식년시 삼등(三等)
     노규태(盧奎泰, 1802 壬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헌종3년(1837) 식년시 삼등(三等)
     노원(盧黿)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4년(1549) 식년시 삼등(三等)
     노수룡(盧受龍, 1770 庚寅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22년(1822) 식년시 삼등(三等)
     노기(盧麒)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35년(1540)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10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명, 무과 2명, 생원진사시 7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세거지
    경상북도 선산군 선산읍 독동동
    항렬자
    16世
    泰(태)
    17世
    杓(표)
    18世
    勳(훈)
    19世
    達(달)
    20世
    -
    21世
    -
    22世
    -
    23世
    -
    24世
    -
    25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7世孫은 16代孫)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
    경주(慶州)는 경상북도 남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기원전 57년에 6촌(六村)이 연합하여 고대국가를 형성, 국호를 서라벌(徐羅伐)·사로(斯盧)·사라(斯羅)로 하고, 수도를 금성(金城)이라 하였다. 65년(신라 탈해왕 9) 시림(始林)에서 김씨 시조가 탄생하여 국호를 계림(鷄林)으로 칭하기도 하였으나, 별칭으로 사용하였다. 307년(기림왕 10)에 최초로 국호를 신라(新羅)로 하였다. 935년(고려 태조 18)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이 왕건에 항복하자 경주로 개칭하고 식읍을 주었고, 그를 사심관으로 삼았다. 비로소 처음으로 경주라는 명칭이 생겼다. 987년(성종 6) 동경(東京)으로 개칭하고 유수(留守)를 두어 영동도(嶺東道)에 속하게 하였다. 1008년(목종 11) 때 낙랑군(樂浪郡)이라 별칭하다가 1030년(현종 21) 삼경(三京)의 제도가 실시되자 동경(東京)을 설치하고 충렬왕 때 계림부(鷄林府)로 개편하였다. 1202년(신종 5) 경주 야별초의 반란으로 지경주사(知慶州事)로 강등되었다가 1219년(고종 6) 동경으로 환원되었다. 1413년(태종 13) 계림부를 경주부로 개칭한 이후 1415년 병마절도사영을 두었다가 1417년 울산으로 이전하였다. 1637년(인조 15)에 속현인 자인현이 분리 독립하였다. 1895년(고종 32) 군면 폐합으로 경주군이 되었고, 1955년 경주읍과 내동면 전역, 천북면과 내남면 일부가 통합되어 경주시로 승격했으며, 경주군은 월성군으로 개칭되었다. 1989년에는 월성군이 경주군으로 개칭되었다. 1955년에는 경주군과 통합하여 시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경주노씨는
    1985년에는 928가구 3,885명, 2000년에는 2,057가구 6,496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8,000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