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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씨의 종류와 유래 성씨의 역사 족보 이야기 친인척 호칭법 국가 연대표 역대왕 연대표 성씨별 인구순위 본관별 인구순위 고사성어


     
    만경노씨(萬頃盧氏)
    유래
     시조 : 노극청(盧克淸)
    시조 노극청(盧克淸)은 도시조 노수(盧穗)의 여덟째 아들 노판(盧坂, 평양노씨의 시조)의 후손으로 고려 명종 때에 은자광록대부(銀紫光祿大夫), 이부상서(吏部尙書) 등을 거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만경군(萬頃君)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평양노씨에서 분관하여 만경을 본관으로 삼고 노극청(盧克淸)을 1세조로 하였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노혁(盧革) : 문과(文科) 태종1년(1401) 증광시 동진사(同進士)
     노이형(盧以亨, 1694 甲戌生) : 문과(文科) 영조1년(1725) 증광시 병과(丙科)
     노삼방(盧三邦, 1680 庚申生) : 문과(文科) 숙종43년(1717) 식년시 을과(乙科)
     노득신(盧得信, 1615 乙卯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노주장(盧周將, 1605 乙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노기태(盧基泰, 1836 丙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17년(1880) 증광시 삼등(三等)
     노이점(盧以漸, 1720 庚子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32년(1756)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7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3명, 무과 2명, 생원진사시 2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세거지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반촌리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목천리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귀산리
    항렬자
    11世
    세(世)
    12世
    응(應)
    13世
    옥(玉)
    14世
    수(守)
    서(瑞)
    15世
    水변
    16世
    언(彦)
    17世
    이(以)
    18世
    덕(德)
    19世
    진(鎭)
    병(炳)
    20世
    기(基)
    순(淳)
    21世
    현(鉉)
    병(柄)
    22世
    원(源)
    환(煥)
    23世
    木변
    24世
    섭(燮)
    선(善)
    25世
    수(壽)
    26世
    종(鍾)
    27世
    영(永)
    28世
    근(根)
    29世
    용(容)
    30世
    희(喜)
    31世
    석(錫)
    32世
    수(洙)
    33世
    상(相)
    34世
    렬(烈)
    35世
    중(重)
    36世
    흠(欽)
    37世
    승(承)
    38世
    -
    39世
    -
    40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2世孫은 11代孫)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북도 김제
    만경(萬頃)은 전라북도 김제시(金堤市) 만경읍·청하면·진봉면·공덕면·성덕면 일대를 지칭하던 지명이다. 백제 때에는 두내지현(豆乃知縣: 豆乃山縣)이었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가 순모현(淳牟縣)으로 바꾸어 고사주(古四州: 古阜)에 속하게 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만경현으로 개칭되었고, 김제군의 관할이 되었다. 1018년(현종 9)에 임피현(臨陂縣)의 속현이 되었다가 1106년(예종 1) 감무를 두게 되면서 독립했고 후에 현으로 승격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현이 설치되었으며, 1620년(광해군 12) 김제군에 병합되었다가 1622년에는 전주에 통합되었으며 1637년(인조 15) 복구되었다. 별호는 두산(杜山)이었다. 현재 성덕면 일대에는 고읍(古邑)으로 부윤현(富潤縣)이 있었다. 부윤현은 본래 백제의 무근촌현(武斤村縣)인데 757년에 부윤현으로 개칭하였다. 1018년 임피현의 속현이 되었다가 후에 만경현에 병합되었다. 만경현은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군이 되어 전주부 관할 아래 있다가 1896년 전라북도 만경군이 되었다. 1906년 경지 정리로 면적이 확대되었다가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만경군은 폐지되고 만경면으로 축소되어 김제군의 일부가 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만경노씨는
    1985년에는 1,360가구 5,862명, 2000년에는 1,608가구 5,181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7,435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