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노용신(魯龍臣)
시조 노용신(魯龍臣)은 고려 명종 때 이부 상서(吏部尙書)를 지내고, 고종 때에 몽고군이 침입하여 강화로 천도(遷都)할 때 강화 현령(江華縣令)으로 공을 세워 강화군(江華軍)에 봉해져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노정신(魯廷臣, 1604 甲辰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노이장(魯爾章, 1628 戊辰生) : 무과(武科) 효종7년(1656) 별시 병과(丙科)
노정철(魯廷哲, 1616 丙辰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노석중(魯碩重, 1852 壬子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17년(1880) 증광시 삼등(三等)
노연(魯璉)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1년(1546) 식년시 삼등(三等)
노규태(魯奎泰, 1648 戊子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9년(1683) 증광시 삼등(三等)
노순석(魯順碩)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연산군1년(1495) 증광시 삼등(三等)
노태첨(魯泰瞻, 1701 辛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9년(1733) 식년시 이등(二等)
* 모두 8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3명, 생원진사시 5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
강화(江華)는 옛 이름은 갑비고차(甲比古次)이며 고구려 때 혈구군(穴口郡), 신라 때는 해구군(海口郡)으로 개칭하고 한주(漢州: 廣州)에 예속시켰다. 940년(고려 태조 23) 현재의 지명인 강화현으로 개편되었고, 1232년(고종 11) 몽골의 침입으로 고종이 천도하여 약 40년간 사실상 수도 역할을 하였으며 지군사(知郡事)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에는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고, 1618년(광해군 10) 부윤(府尹)으로 승격되었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는 인조의 피난처가 되었으며 유수부(留守府)로 승격되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에도 인조가 몽진(蒙塵)을 하려고 하였다. 1906년(광무 10)에 강화군이 되었다. 1995년 경기도에 속하였다가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다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근세에 이르러서는 병인양요(丙寅洋擾, 1886)·신미양요(辛未洋擾, 1871)·운양호사건(雲揚號事件, 1875) 등 역사적인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강화노씨는
1985년에는 3,248가구 13,286명, 2000년에는 4,224가구 13,499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7,068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