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노중연(魯仲連)
시조 노중연(魯仲連)은 제(薺)나라 사람으로 진시왕을 추출하는데 공을 세웠으며 그의 손자 노계(魯啓)는 기자(箕子)가 우리나라에 올때 신하로 따라와 강화에 정착하여 살게되었다고 한다. 그의 후손인 노형권(魯衡權)이 고려 공민왕때 공조판서로서 홍건적을 토평한 공으로 밀산(밀양)군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그를 1세조로 하고 본관을 밀양으로 하였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노지신(魯之信)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 모두 1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남도 밀양
밀양(密陽)은 지금의 밀양시 일원에 있던 지명으로 삼한시대에 변한(弁韓)의 일부로 가락국(駕洛國)에 속했으며 미리미동국(彌離彌東國)이 있었다고 한다. 법흥왕 때 신라에 병합되어 추화군(推火郡, 밀벌 또는 미리벌)이 설치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에 밀성군(密城郡)으로 개편하였다. 995년(고려 성종 16)에는 밀주(密州)로 개칭하였고, 1018년(현종 9)에 밀성군(密城郡)으로 개편되었다. 1275년(충렬왕 1)에는 군민의 모반 사건으로 귀화부곡(歸化部曲)으로 강등되어 계림부(鷄林府: 慶州)에 편입되었다가 후에 현으로 승격하였다. 1285년에는 군으로 승격되었으나 다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에 밀양부로 승격하였다. 조선 1415년(태종 15)에 밀양도호부가 되었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경상남도 밀양군이 되었다. 1918년에는 부내면이 밀양면으로 개칭되고 1931년에 밀양읍으로, 1989년 시로 승격하여 독립하였다. 1995년 밀양군이 밀양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밀양노씨는
1985년에는 423가구 1,925명, 2000년에는 391가구 1,268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777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