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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독고씨(南原獨孤氏)
유래
시조 : 독고신(獨孤信)
시조 독고신(獨孤信, 자는 성의)의 조상는 고려중엽 중국 하남에서 8학사의 한사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착한 독고공순(獨孤公舜)이다. 그의 손자 독고향이 고려 충숙왕때 원나라에 가서 공주를 모셔온 공으로 남원군에 봉해졌으나 그후의 기록은 없다. 독고신(獨孤信)은 이름난 학자로 명성을 떨치고 나라에 공을 세워 남원군(南原郡)에 봉해져서 그를 1세 조상으로 하고 본관을 남원으로 하였다. 인물
독고신(獨孤信)의 아들 독고석(獨孤碩)과 독고청(獨孤淸)의 형제 대에서 두 계통으로 갈라져서 후대로 내려오며 가문이 크게 번성하였다. 특히 조선 인조 때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이었던 독고입(獨孤立, 교수 행의 맏아들)은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의주(義州)의 성을 수비하다가 적의 기습을 받아 아버지 독고행(獨孤行)을 비롯하여 아들 독고수와 함께 3대가 순절하여 크게 명성을 떨쳤다. 그의 아우 독고성(獨孤成)도 성이 함락되자 적진에 뛰어들어 수백명을 죽이고 자신도 장렬한 최후를 마침으로써 충절(忠節)의 가통(家統)을 더욱 빛냈다. 그외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오른 독고필(獨孤弼), 독고암(獨孤巖)의 부자와 판관(判官) 독고관(獨孤寬, 호군을 역임한 독고산의 아들)이 유명했고, 예빈시 첨정(禮賓寺僉正) 독고익(獨孤益), 효자로 이름난 독고점(獨孤漸), 공조참의(工曹參議) 독고웅(獨孤雄)과 함께 가맥(家脈)을 이었다.
주요 인물
항렬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북도 남원
남원(南原)은 오늘날 전라북도 남원시 일원의 지명으로 16년(백제 온조왕 34) 무렵에 고룡군(古龍郡)이라 불렀다가 196년(초고왕 31)에 백제의 5방 중 대방군(帶方郡)이 되었다. 685년(신라 신문왕 5)에 9주 5소경의 하나로 남원소경이 설치되었고, 757년(경덕왕 16)에는 남원군으로 개칭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5현을 관할하는 남원부로 개편되었다. 1018년(현종 9) 지부사(知府事)로 고쳤다. 1310년(충선왕 2) 대방군(帶方郡)으로 강등되었다가 1360년(공민왕 9) 부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 남원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1457년(세조 3)에는 남원진영을 두었고, 1654년(효종 5)에는 전라좌영을 설치하였다. 1740년(영조 16) 일신현으로 강등되었으나 이듬해 환원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라 4부 중 하나인 남원관찰부가 되었다가 1910년 남원 48방을 22개면으로 통폐합하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남원군으로 개칭하였다. 1931년 남원면이 남원읍으로 승격되었고, 1981년에는 남원읍이 시로 승격하여 남원시와 남원군으로 분리되었다가, 1995년 남원군이 남원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남원독고씨는
1985년에는 209가구 674명, 2000년에는 142가구 452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457명으로 조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