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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씨의 종류와 유래 성씨의 역사 족보 이야기 친인척 호칭법 국가 연대표 역대왕 연대표 성씨별 인구순위 본관별 인구순위 고사성어


     
    광천동씨(廣川董氏)
    유래
     시조 : 동중서(董仲舒)
    시조 동중서(董仲舒, BC179~BC104)는 중국 한나라 무왕(漢武帝)때 유학자로 이름이 높았던 사람이다. 동중서의 42세손인 동박소에게 동계선, 동승선, 동인선 3형제가 있었는데 동계선은 중국에 살면서 벼슬을 하였고, 동승선(董承宣)은 명나라때에 접위사(接慰使)로 우리나라에 와서 조선개국과 함께 벼슬을 한 후 나라에 공을 세워 영천(榮川: 지금의 경북 영주)군에 봉해지고, 벼슬에서 물러나 함경도(咸鏡道) 북청(北靑)의 이곡(泥谷)에서 살아오면서 하면서부터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한편 동승선의 동생 동인선(董印宣)은 아버지의 친구인 서달(徐達)이 태조 이성계에게 천거하여 지휘사(指揮使)가 되었으며, 태조를 따라 전공을 세워 이부상서(吏部尙書)가 되었다. 그래서 동중서를 시조로 하고, 동승선과 동인선을 각각 1세조로 하여 대를 이어오고 있다.

    처음에는 동승선의 봉군지였던 영천을 본관으로 하였는데, 함경북도 명천(明川)지방에 살던 후손들은 원주(原州)를 본관으로 하는 등 동원(同源)이면서도 본관을 달리하여 부르다가 조선 단종(端宗) 때에 이첩(移牒: 관청으로 보내는 통첩)으로 다시 영천이라 하였으나, 정유재란 때 명나라 제독(提督)으로 원병을 이끌고 우리나라 에 건너온 동일원(董一元)의 소장문서를 근거로 하여 시조 동중서의 출생지인 중국의 광천을 본관으로 하게 되었다.
    인물
    동승선(董承宣)의 손자 동덕란(董德蘭)은 공조시랑(工曹侍郞)을, 현손(玄孫) 동보하(董寶夏)와 동상하(董尙夏)는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역임하여 태자태보(太子太保)에 오른 동학정(董學政, 동인선의 현손)과 함께 가문을 이었다.
    한편 동일원(董一元)의 아들 동창순(董昌順)은 안주목사(安州牧使)를 지냈으며, 동대순(董大順)의 맏아들 동한필(董漢弼)은 인조때에 선공감역(繕工監役)에 있다가 병자호란(丙子胡亂)으로 청(淸)나라와의 굴욕적인 화의가 성립되자 비분강개하며 벼슬을 버리고 지리산에 은거한 후 누차에 걸친 조정의 부름에도 불응하며 자손들이 벼슬길에 나가지 말도록 유언했다고 한다.
    동희방(董希芳)의 아들 동응란(董應蘭)은 1624년(인조 2) 부원수(副元帥)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키자 향병(鄕兵)을 일으켜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진무원종일등공신(振武原從一等功臣)에 책록되고, 우봉 현감(牛峰縣監)을 거쳐 갑산부사(甲山府使)로 나갔다.
    그밖의 인물로는 용양위 부호군(龍 衛副護軍)을 지낸 동혜진(董惠震)과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을 역임한 동정란(董廷蘭)이 유명했으며, 동하욱(董夏旭)은 공조 참판(工曹參判)에 올라 부호군(副護軍) 동희경(董禧景), 부사(府使) 동기연(董基衍), 현감(縣監) 동진호(董鎭鎬)등과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항렬자
    21世
    만(萬)
    22世
    종(宗)
    23世
    진(進)
    24世
    병(秉)
    25世
    목(穆)
    모(模)
    26世
    희(熙)
    27世
    -
    28世
    -
    29世
    -
    30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2世孫은 21代孫)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중국(中國) 하북성(河北省)
    광천(廣川)은 중국 북부지방의 하북성(河北省) 조강현(棗强縣)에 속한 지명으로 지금의 북경(北京) 근처이며, 중국의 중요 산업지대로 유명하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광천동씨는
    1985년에는 909가구 3,851명, 2000년에는 1,299가구 4,130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2,692명으로 조사되었다.